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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혁신의 조건, "관성 벗어난 자유로운 조직문화"

[키플랫폼 뉴스레터] 김기령 타워스왓슨코리아 대표 인터뷰

조철희 | 2014.09.0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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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두 해 동안 우리 경제의 철학과 전략으로서 강조된 화두는 '창조'와 '혁신'이었다. 오랜 실험 기간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이 철학과 전략이 제대로 실행됐다거나 뚜렷한 성과가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는 못하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새롭게 변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전후의 나라들은 대체로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산업 전략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며 성장한다. 제조업 기반 패스트팔로어인 우리 산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3만 달러 이상 수준에서는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만들고, 시장에 내놓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고성장 시대가 아닌 저성장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저마다 골머리를 앓아가며, 많은 공을 들여 내부적으로 새로운 경영 철학과 비즈니스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전략들이 철저한 실행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전략의 목표를 달성하는 단계까지 이르는 경우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머서, 헤이그룹, 에이온, 타워스왓슨 등 글로벌 톱 HR 컨설팅펌의 한국 대표를 두루 거치며 국내 대표적인 인사조직 분야 컨설턴트로 인정받고 있는 김기령 타워스왓슨코리아 대표(사진)는 "기존 관행이나 현실적인 조건 등 여러 틀에 메여있는 전략은 전략으로 끝날 수 있다"며 "모든 관행과 틀에서 벗어나고, 현실적 조건도 깨고, 실행의 단계와 과정까지 고려한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특히 전략과 철학을 세우거나, 바꾸거나, 실행하려면 '기본가정'(basic assumption)이라 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어느 조직에나 있는 '헤어볼'(hairball·고양이가 삼킨 털이 고양이의 소화기관 내에서 뭉친 것)과 같은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수립된 전략이 실행되지 않거나, 목표 달성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전략을 만드는 것은 사실 리더가 아니라 전략기획 부서원들인 경우가 많다. 마치 물건을 팔듯 리더의 선택을 갈망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실행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전략을 만들 때 실행 과정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실행할지를 고려해야 전략이 완결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전략이 실행되는 과정까지 끝까지 챙겨야 한다. 전략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스스로 실천이 담보돼야 한다.

얽혀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실적인 조건을 따지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작은 개선 밖에 있을 수 없으며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 그런 관성을 깨야 한다.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모든 조직에는 헤어볼이 존재한다. "그런 것은 우리가 하면 안 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라는 걱정을 많이 한다. 자기 스스로 테두리를 만든다. 그러면 회사의 발전은 없다. 조직문화 차원에서 그 틀을 없애고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미션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움이 있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

구성원들 스스로 좋은 회사이고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있는 한 기업을 컨설팅한 적이 있다. 각자 맡은 임기 안에 과오가 없고, 아무런 사고가 없는 것이 평가를 받는 회사였다. 마치 정부나 군대와 같았다. 그러나 관행을 깨고 시도한 일이 비록 실패하더라도 오히려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약 2년 정도 시행했다. 그제야 이 회사는 새롭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위험을 회피하거나 안정적인 운영만 크게 인정받는 조직에서는 '돌직구'가 나오지 않으며, 창조와 혁신이 있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은 잘못된 것들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장 잘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물음표를 찍을 때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혁신과 새로운 것은 이 물음표로부터 시작한다. 질문이 일상화되어 비즈니스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당연시 되고 있는 것에 대한 물음, 즉 챌린지가 없으면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

-조직 구성원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분야에 푹 빠져 있는, 몰입하고 있는 사람이다. 몰입은 인센티브로 유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재적인 동기가 중요하다.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때 몰입할 수 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flow) 중 몰아의 단계에 들어서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진다. 이때 많은 것이 새롭게 창조된다.

조직에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4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일 자체에 '의미'(mean)를 줘야 한다. 그리고 '자율성'(autonomy)이 필요하다. 계속 실력이 늘고 있다는, 숙련(mastery)되고 있다는 자신감도 필요하며, 조직과 조직원 간 피드백(feedback)이 잘 이뤄져야 한다.

일례로 직원 스스로 자신이 할 일을 제안하고, 실행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회사는 그 직원이 하고 있는 일이 잘 되고 있는지, 얼마나 진전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의미 있는 피드백을 주는 제도와 문화 속에서 몰입도가 높아질 수 있다.

-리더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리더십의 핵심은 '복원력'(resilience)이다. 쉽게 성공한 회사는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높은 반면 실패와 고난의 경험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는 오래 간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리멘탈'(유약한 정신력)이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실패에 대한 강인함이 필요하다.

고성장 시대에는 대박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저성장 시대다. 이 시기에는 작은 성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들과 시장도 세분화돼 있고, 앞으로는 풍요 속에서 소비를 창출해야 하는 어려운 조건이다. 따라서 실패를 하더라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한다. 리더는 이런 실패를 다시 복원시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잘 제시할 수 있는 조직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기업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내부적으로도 공모를 하고,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도 하지만 우선 새로운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조직문화부터 개선돼야 한다.

직원들이 힘들게 고민해서 이야기한 것에 대해 리더와 조직이 일언지하에 무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거부나 반대를 하더라도 직원이 한 것 이상의 고민을 하는 구조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즉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아니라고 이야기할 땐 회사도 그 이상으로 같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만 묵혀 고민해도 나름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조직문화가 기본가정이 돼야 한다. 그래야 철학도, 전략도 제대로 바뀌고, 실행될 수 있다.

김 대표는 혁신적인 조직문화를 지닌 기업으로 게임 업체 '밸브'(Valve)의 사례를 제시했다.

밸브는 게임 개발자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다. 밸브는 특정인이 계획과 성과를 관리하지 않는다. 보스와 관리자가 없는, 완전하게 수평적인 열린 조직 구조를 갖춘 창의성 중심의 회사다. 창업자와 소수의 임원들이 있지만 보스나 관리자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저 구성원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모여 팀을 꾸리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정리해 나눠 진행한다.

이 회사 사무실의 책상은 바퀴가 달려 있다. 책상을 밀어 자리를 옮기며 자신이 관심 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닌다. 프로젝트를 만든 사람은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해 그의 책상을 끌어올 수도 있다. 이때 회사는 이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에만 주력한다. 이같은 업무 방식은 개발뿐만 아니라 세일즈, 마케팅, 채용 등 모든 분야에서 똑같이 이뤄진다.

물론 리더는 필요하다. 그래서 프로젝트별로 자연스럽게 리더를 뽑는다. 그러나 이 리더는 업무와 성과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팀 구성원들 간의 의사소통, 외부와의 의사소통을 중개하는 역할만 수행한다.

이런 형태의 조직문화가 가능하려면 직원들이 갖고 있는 자유의 범위가 매우 넓어야 한다. 특히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실수나 실패를 해도 해고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힌다. 실패에 자유로워야 자유로운 조직문화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회사 직원들에게 그런 확신이 강하게 심어져 있어 직원들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