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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전화기 보급한 140살 기업의 '글로벌화 대응전략'

[2016 키플랫폼: 4차산업혁명 대응전략]①<인터뷰>헬레나 노만 에릭슨 CMO

스톡홀름(스웨덴)=하세린 | 2016.03.1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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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출시된 에리코폰(Ericofon). 코브라폰으로도 불린다. 다이얼과 수화기, 송화기가 일체된 최초의 전화기다. 다이얼은 바닥에 숨겨져 있다. 20세기 후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뛰어난 디자인을 인정받아 당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돼 있다. /사진=하세린 기자
# 1876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전신기 수리소를 설립한 라르스 마그누스 에릭슨. 얼마 후 전화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그는 곧바로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스웨덴 내수 시장이 작은 탓이다. 창업 5년 만에 노르웨이와 러시아에서 대규모 계약을 따냈다. 1896년 구한말 고종 때 우리나라에 처음 전화기를 보급했다. 1897년엔 중국 상하이에도 진출했다. 1900년 이 회사는 전세계적으로 1000명의 직원과 400만 스웨덴크로나(약 5억65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모바일 네트워크 1위 기업 에릭슨(Ericsson)의 창업 초창기 얘기다. 에릭슨은 현재 전세계 무선 트래픽의 40%를 담당하고 매일 10억명의 사람이 이 회사의 무선 통신망을 이용하고 있다.

지난달 스웨덴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시스타 과학단지에 위치한 에릭슨 본사에서 만난 헬레나 노만 에릭슨 CMO(최고마케팅책임자)는 "140년 전부터 에릭슨은 글로벌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화에 적극 나선 에릭슨은 140년째 혁신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에릭슨이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한 결과라고 단언했다. 헬레나 노만 에릭슨 CMO로 부터 에릭슨의 미래 대응전략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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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 노만 에릭슨 CMO(최고마케팅책임자)는 "회사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식은 시장의 수요에 맞게 거의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에릭슨
다음은 헬레나 노만 에릭슨 CMO와 일문일답

-에릭슨이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 적응한 비결은.
▶140년간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같은 비즈니스를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변화에 빠르게 대응했기에 가능했다. 회사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식은 시장의 수요에 맞게 거의 모든 것을 정기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도 에릭슨은 중대한 변화 국면에 있다. 18년 전에 에릭슨에 입사했을 때 우리는 하드웨어 업체였다. 하지만 지금은 하드웨어가 우리 사업 가운데 비중이 가장 작다. 항상 변해야 한다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비결이다.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하지 못하는 회사들도 많다.
▶결국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흐름을 읽고 베팅을 해야 한다. 시장이 변하고 기술이 바뀔 때도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여전히 유효한지, 새로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여러번 경험했고 그러면서 변화에 적응하는 DNA가 생겼다.

-에릭슨이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뭔가.
▶우리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모든 기술 발전은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전화기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전화기를 비롯한 통신기기들이 더 이상 전화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문자나 인터넷 검색 등) 전화 외의 모든 목적으로만 사용된다. 이에 따라 여러 기술이 변하고 있지만 사실 통신 자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4년 전 소니에릭슨 주식을 팔기 전까지 에릭슨은 130여년간 항상 전화기를 팔아왔다. 예전에 전화기는 네트워크의 연장선이어서 전화기를 팔지 않으면 네트워크를 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전화기와 네트워크는 전혀 다른 상품이 됐다. 에릭슨은 전화기 제조업자들의 네트워크 문제로 협업하지만 스스로 전화기를 만들진 않는다. 전화기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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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이 과거 생산하던 휴대전화 모델들. 2011년 10월 소니가 에릭슨이 보유한 소니에릭슨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에릭슨의 전화기 제조 시대가 막을 내렸다. /사진=하세린 기자
-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
▶중요한 건 회사의 어떤 기술과 상품이 미래에 유용할까다. 과거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버리는 게 낫다. 예전의 방식대로 제품을 팔고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면 이제는 먹히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업자가 들어와서 모바일 브로드밴드와 IoT(사물인터넷) 등과 같은 큰 변화의 기회를 사로잡을 것이다. 우리가 이 변화에 참여하려면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개발하고, 그에 필요한 경쟁력과 속도, 에코시스템을 선도해야 한다.

-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예전엔 상대적으로 단순한 경로로 일 했지만 이제 기술은 각종 에코시스템과 파트너십을 통해 이뤄진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때 시스코와 큰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수많은 기업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혼자서 일하는 시대는 지났다. (에릭슨은 올해 'MWC 2016' 행사장에서 25Gbps의 속도로 데이터를 실시간 전송하면서 20.5Gbps 시연에 성공한 SK텔레콤과 '공공장소 첫 5G 시연'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둘은 또 파트너십을 체결한 관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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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의 첫 5세대(5G) 통신 서비스 장비. 에릭슨은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6' 행사장에서 25Gbps의 속도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5G는 초당 20Gbps 이상 속도를 내는 통신서비스로 초기 LTE보다 270배 빠른 속도다. /사진=하세린 기자
-에릭슨은 어떻게 한발 앞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흐름을 읽었다. 무엇이 일어날지 이해하는 것, 거대한 변화는 물론 주변에서 들리는 작은 신호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분석해야 한다. 10~20가지 트렌드가 적힌 리스트를 받아보고 '아 이것이 트렌드구나' 하는 것은 너무 쉽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사람과 사물이 연결되는 네트워크 사회에 대한 전망은 2009년에 나왔다. 그 누구도 IoT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 때였다. 우리는 모든 것이 앞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한 질문은 '어떻게 모든 것을 연결할 것인가'가 아니었다. 대신 모든 것이 연결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였다. 이게 지금도 우리의 핵심 질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시스템 수준에 주력하는 이유다. 플랫폼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 핵심은 무엇인가.
▶브로드밴드와 클라우드, 모빌리티가 우리가 2009년에 말한 핵심 주제였다. 지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5G와 클라우드, IoT다. 그런데 IoT가 네트워크 사회냐, 그건 또 아니다. IoT는 네트워크 사회로의 이행과정일 뿐이다. 모든 것을 연결하는 게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모든 것을 연결해서 어떻게 더 좋은 것을 창출해내느냐가 핵심이다. 이를 기반으로 R&D(연구개발)를 하고, 로드맵을 짜고, 제품과 경쟁력, 전략 디자인을 해야 한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으면서 그것을 현재 수준에서 당장 실현하는데도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나 뛰어난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6 소비자 랩 테스트 리포트(consumer lab test report)에서 스마트폰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엇을 스마트폰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다. 지금과 똑같은 스마트폰이 5년 후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겠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기기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수많은 연결된 기기들이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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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 본사 안에 있는 오픈 공간. CEO(최고경영자)가 1년에 한번 직원들에게 실적 발표 내용을 설명하는 장소도 이곳이다. /사진=하세린 기자
-에릭슨이 느끼는 가장 큰 위협이 있다면.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느끼는 가장 큰 리스크는 내부의 변화보다 외부의 변화가 빠르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지만 요새 더 분명해지는 위협이다. 최근 망하는 회사들을 보면 다 이 이유 때문이다. 이것이 새벽에 나를 깨우는 이유다. 우리는 충분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5년, 10년 후에 에릭슨은.
▶모바일 서비스, 모바일 네트워크와 연관된 통신 서비스에 주력할 것이다. 이것 역시 15년 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분야다. 그때까지 서비스는 하드웨어를 팔면 무료로 따라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바일 서비스와 네트워크 분야는 하드웨어 분야 만큼이나 크다. 매출 측면에서 보면 서비스는 에릭슨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지금 이 부분이 에릭슨의 강점이고 가장 투자를 많이 하는 부분이지만 5년 후를 내다보면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시장의 변화에 따라 기업도 변해야 한다. IP와 클라우드, OSS/BSS(운영 및 업무지원 시스템), 데이터의 폭발적인 증가에 대비한 시스템 통합 서비스, 그리고 통신사가 아닌 자동차·보안회사·운송업체 등과의 파트너십이 주력 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