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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男'이 세운 회사, 12개 계열사 글로벌 기업으로

[미리보는 2016 키플랫폼: 4차산업혁명 대응전략] <인터뷰>⑯ 샬롯 비서 비스콘그룹 마케팅&사업개발 매니저

스그라벤딜(네덜란드)=배영윤 | 2016.04.0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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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콘 그룹의 혁신 기술로 재배되고 있는 작물. 자사의 혁신적인 수경 재배 기술로 비용 절감은 물론 상품성 개선까지 이끌어냈다./사진=배영윤 기자
#1927년 네덜란드. 아마(Flax, 천연 섬유의 일종)를 재배하던 농부 얀 비서(Jan Visser)는 이 분야에 자동화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아마 재배 아이디어를 내놨다. 작은 나라 네덜란드를 넘어 전 세계에 기술과 자동화 기계를 팔았다. 당시엔 혁신적인 기술로 인정받아 30여년간 세계 2위의 위치까지 올랐다.

1960년,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다. 아마 재배의 최적의 환경 조건을 갖춘 러시아에서 새롭게 출현한 경쟁자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첨단 기술도 선천적 환경과 양적 공세 앞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결국 세계 2위를 호령하던 네덜란드 아마 기업은 파산했다.

'파산남' 얀 비서는 주저앉지 않았다. 아마 산업에서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네덜란드의 전통 산업인 원예업은 당시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토양을 블록 형태로 만들고 그곳에 작물을 심는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기계를 벨기에에서 수입한 네덜란드 최초 회사가 됐다.

벨기에로부터 기계 공급이 끊기면서 또다시 어려움에 봉착했지만 얀 비서는 기계를 직접 만들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45년간 유럽의 농업 및 원예업 자동화의 주역, 적재 및 물류 산업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는 '비스콘 그룹'(Viscon Group)이 그렇게 탄생했다.

비스콘 그룹은 네덜란드와 폴란드에 공장을 두고 전세계 15개 나라에 세일즈 포인트를 확장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12개 계열사에 200명이 넘는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창업주 얀 비서의 '혁신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후손들이 CEO는 물론 비스콘 그룹 내 계열사의 경영과 실무를 도맡고 있는 '가족 기업'이다.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16 키플랫폼'(K.E.Y. PLATFORM 2016) 특별취재팀은 지난 1월 네덜란드 스그라벨딜에 위치한 비스콘 그룹 본사를 방문했다. 비스콘 그룹 CEO의 딸인 샬롯 비서(Charlotte Langerak-Visser) 마케팅&사업개발 매니저를 만나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 강자로 살아남는 비결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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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비서(Charlotte Langerak-Visser) 비스콘 그룹 마케팅 & 사업개발 매니저. 그는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혁신 DNA를 자사의 성장 비결로 꼽았다./사진=배영윤 기자
- 비스콘 그룹의 사업에 대해 설명해달라.
▶농산품의 생산 과정을 자동화·기계화한다. 생산 자재를 핸들링하고 상품 적재, 운반 등 상품 생산에 관련된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양계산업 분야에도 진출했다. 마이크로웨이브를 이용한 인큐베이터를 자체 개발해 첨단 달걀 부화 시스템을 도입했고, 질 좋은 상품을 자동 선별하는 기계도 개발했다. 저장 시스템 관련 사업도 하고 있다.

- 과거 창업주가 파산했을 때 어떻게 새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나.
▶당시 은행에서 새 사업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보고 지원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농산품 산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의 최종 목적은 더이상 은행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패밀리 펀드에만 의존하고 있다. 12개까지 사업군을 확장한 것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이다. 전략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리스크를 분산했고 현재 비스콘 그룹은 안정된 회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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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도르트레흐트 부근 스그라벤딜에 위치한 비스콘 그룹 본사 내부./사진=배영윤 기자
- 경쟁사와 차별되는 사업 전략은 무엇인가.
▶두 가지 핵심가치가 성장 동력이다. 첫 번째는 혁신(innovation)이다. 경쟁사보다 기술적으로 월등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갖췄다. 두 번째 가치는 신뢰성(reliability)이다. 우리 기계는 20년 이상의 긴 수명과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초기 비용은 비싸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적이다.

턴키 시스템(turn-key system, 일괄수주방식)이 기본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자체 솔루션으로 해결 가능하다. 우리의 슬로건은 "we have an IDEA"다. 우리에겐 언제나 아이디어가 있고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 각 사업군마다 최고의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 회사 내에서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세스가 있나.
▶대부분 인턴을 통해 채용한다. 능력있는 젊은 직원들을 채용하고 팀 내에서 전문가로 교육한다. 대학교에 찾아가 직접 인턴을 뽑기도 한다. 역동적인 환경을 즐길 줄 아는 인재를 선호한다. 혁신과 표준, 두 가지에 초첨을 맞춰 교육한다.

- 글로벌 전략이 궁금하다.
▶최근 시장 집중 비율에 변화를 줬다. 국내(네덜란드) 60%, 해외 40%에서 국내 30% 해외 70%로 바꿨다. 네덜란드만의 식품 안전 솔루션을 해외 시장에 도입하는 데에도 집중하고 있다. 아시아, 북미, 동유럽 등지로 확장할 계획이다.

- 비스콘만의 전통이나 특징이 있다면.
▶우리에겐 특별한 DNA가 있다. 이노베이터, 모험가 DNA다. 새로운 영역·사업·시장·아이디어·기회로 확장하는 데 도움된다. 창업주 얀 비서는 세계 곳곳을 누볐다. 당시 그런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 DNA가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로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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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콘 그룹이 생산 중인 가정용 재배 작물 상품. 자동으로 물을 공급하는 스트랩 등을 개발해 바쁜 현대인들도 식물을 쉽게 키울 수 있는 키트를 만드는 등 웰빙 라이프를 위한 제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본사 내에는 고객들을 위한 쇼룸도 마련했다./사진=배영윤 기자
- 실생활에 밀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비스콘의 기술이 실생활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식품에 대한 '추적'(track and trace)이 중요해지고 있다. 신선식품에 대한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발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추적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자동화 과정에서 사람의 접촉을 최대한 배제했다. 식량 부족 현상에도 대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전문가와 함께 동물 사료용 곤충 생산 사업을 하고 있다. 동물에게 양질의 곤충을 먹이면 옥수수와 같은 우리의 음식을 사료로 내줄 필요가 없다. 질 좋은 곤충을 먹은 닭은 더 좋은 육질이 형성되고 우리는 좋은 품질의 닭고기를 먹을 수 있다. 선순환이 되는 것이다.

- 최근 한국의 '농협'과 사업 교류가 있었다. 한국의 농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은 많은 산업이 발전한 나라이지만 농업, 원예업 등은 아직 자동화 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있다. 발전 가능성이 충분한 시장이라 생각해서 교류하고 있다.

- 글로벌기업을 지향하는 한국 기업에 조언한다면.
▶로컬 파트너와의 협력이 필수다.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회사에도 다양한 국적의 직원이 있다. 이들을 보면서 모든 문화에 각각의 강점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각각의 장점을 융합해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다양한 틈새 시장을 포착해 사업 영역을 확장할 것이다. 학교와 연구소 등 연구 파트너를 계속 찾고 있다.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 과학자들의 아이디어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이들의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