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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 지속하는 사우디…트럼프 석유 정책에도 영향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사우디 증산, 美 셰일 업체에 악재

김상희 최성근 | 2025.06.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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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야드 로이터=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가 1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왕궁에서 열린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25.05.13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리야드 로이터=뉴스1) 류정민 특파원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가 2년 넘게 지속했던 감산 정책을 철회하고 증산에 나서면서 글로벌 석유 시장의 지형을 흔들고 있다. 석유 공급을 대폭 늘린 사우디가 저유가를 무기로 치킨게임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사우디의 증산 전략은 경쟁자인 미국 셰일 업체들의 위기를 초래하고 화석연료의 부활을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석유정책에도 차질을 가져올 거란 평가도 나온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사우디가 감산에서 증산으로 방향을 전환한 배경을 분석하고 향후 미국 셰일 업체와 트럼프 행정부 석유정책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다.



사우디 증산 전환, OPEC+ 내부 결속·시장 재편 신호탄


사우디 주도 하에 지난 4월부터 석유 증산을 시작한 주요 산유국 협의체 OPEC+(플러스)는 5, 6월에 이어 7월에도 하루 41만 1000배럴 규모의 석유 생산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앞서 2023년 11월부터 하루 약 600만 배럴을 감산하면서 유가를 부양해왔던 OPEC+가 4개월 연속 증산에 나서자 국제유가는 한때 배럴당 60달러 선 밑으로 떨어졌다. 최근 지정학적 이유로 유가가 단기적으로 급등하고 있지만, 글로벌 수요가 위축된 상황에서 사우디의 증산이 더해지면 국제유가는 하락 추세를 나타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장기적으로 국제유가가 약세를 띠면서 배럴당 60달러 선 밑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사우디가 감산을 포기하고 증산으로 방향을 전환한 배경으로는 먼저 OPEC+ 내부 결속이 꼽힌다. 그간 하루 200만 배럴의 생산을 포기하면서 감산을 주도했던 사우디는 OPEC+ 회원국 중 일부가 감산 합의를 지키지 않고 초과 생산해 온 사실에 불만을 표해 왔다. 이라크,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은 할당량을 초과해 생산해왔고, 아랍에미리트(UAE)와 오만 등도 할당량을 높여줄 것을 요구하면서 사실상 생산을 늘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에 사우디가 감산을 포기하고 증산으로 전환한 것은 이러한 회원국들에 대한 일종의 응징이라는 평가다.

감산 정책이 유가 부양에 실패하면서 사우디가 줄어든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시장 재편 전략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기본적으로 사우디 정부는 유가가 배럴당 91달러가 돼야 균형재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고유가 상황을 선호한다. 지난 2년 동안 사우디 정부가 유가 부양을 위해 감산을 지속한 이유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셰일 업체들은 적극적으로 석유 개발에 나서 일일 생산량이 1340만 배럴로 사우디를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 됐다. 즉 사우디가 감산을 통해 유지했던 고유가의 혜택을 미국 업체들이 차지하고 시장 점유율까지 늘린 셈이다. 이에 사우디 정부는 상실한 시장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감산을 철회하고 본격적인 증산에 돌입했다는 설명이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우디가 아무리 감산을 해도 미국이나 비 OPEC 국가들의 석유 생산이 늘면 유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제는 사우디가 증산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OPEC+ 회원국들의 비협조 속에 사우디는 생산량도 줄고 가격도 떨어지면서 재정 문제가 악화됐다"며 "석유 생산을 늘려서 재정 수입을 보전하는 동시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원국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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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클라호마주 광구 셰일 생산시설.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美 셰일 업체에 악재…트럼프 석유정책에 영향


사우디의 석유 증산은 화석연료의 부활을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석유정책에도 영향을 줄 거란 분석이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 시추를 강조하는 구호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치며 미국 내 화석연료 개발을 대폭 늘리겠다고 말해왔다.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미국 전역의 셰일가스와 석유를 마음껏 개발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공약도 했다.

한편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경제의 큰 장애요인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유가 안정을 국정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면서 치솟는 소비자물가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선 유가를 낮추는 게 필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사우디를 가장 먼저 방문한 것도 석유 증산에 대한 협력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정상회담 직후 공동성명에서 '양국의 에너지 전략적 협력 확대'를 명시했고, 이어 사우디가 OPEC+ 회의에서 석유 증산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우디의 증산이 트럼프 대통령의 석유정책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유가 하락은 미국 소비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지만 석유를 생산하는 셰일 업체들에게 악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본집약적이고 수익성에 민감한 셰일 산업은 유가가 낮아져 손익분기점이 붕괴되면 생산을 할 수 없다. 특히 인건비 등이 높아진 데다 최근 철강 관세 부과 등으로 시추 장비 가격까지 오르면서 생산단가가 65달러 선으로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원가 경쟁력을 앞세운 사우디의 증산이 지속될 경우 지난 2015년처럼 셰일 업체들이 줄도산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 전문위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생산을 늘려 유가를 떨어뜨리면서 화석연료 산업을 부흥시키려는 이중 전략을 취하고 있다"면서 "국영기업 중심의 사우디와 달리 민간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에선 유가가 떨어지면 정부가 아무리 원해도 생산을 늘리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