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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관리 잘하면 죽은 사업도 무덤에서 살아나"

170년 기업 美 코닝의 '실패관리 성공방정식'…마틴 커랜 혁신책임자 인터뷰

뉴욕(미국)=키플랫폼 특별취재팀 | 2018.04.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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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코닝
모든 혁신기업은 실패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실패의 경험이 반드시 혁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실패 자체는 정상적 기업활동의 산물이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기업활동의 역사가 오래되면서도 혁신을 성장동력화 한 기업들은 예외 없이 최고 자리에 올랐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실패를 빠르게 인정하고 배우며 쓰라림을 씻어내고 교훈을 간직해 다시 활용한다. 이 같은 프로세스가 역사와 문화로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조직원들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실패할 자유'를 갖는다. 나아가 빠른 기술 진보 속도로 더욱 커진 실패 확률을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성숙한 혁신기업의 문화에 용해된 혁신추진과 실패관리의 성공방정식을 추출해 보고자 소재과학 분야 최고 혁신기업 코닝(Corning)의 마틴 커랜(Martin J. Curran) 총괄부사장 겸 혁신책임자(Corning Innovation Officer·사진)을 미국 뉴욕주 코닝시 본사에서 만났다.

커랜 부사장은 160여 년 코닝 역사상 최초로 임명된 혁신책임자다. 2012년 8월 임명돼 신규 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도록 혁신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성장 프로그램 포트폴리오를 총괄한다.

-코닝의 혁신 프로세스는 중앙집중적 R&D(연구개발)과 사업부 간 연계로도 신사업과 혁신을 잘 일궈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혁신책임자를 왜 따로 뒀는가.
▶코닝의 사업전략은 고객이 원하는 소재분야 문제해결을 효과적으로 잘 하는 것으로 대표된다. 다만 이 과정을 통해 유의미한 규모의 사업으로 성장하려면 집중과 실행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모든 프로젝트를 '중앙'(center)과 '사업부'(Division)로 분리해 유연하게 관리한다. 내가 그 관리를 책임진다.

-중앙과 사업부는 각각 어떤 역할인가.
▶중앙은 기존 사업에서 시작했으나 확장 잠재력이 굉장히 커 한 사업부의 역량으로는 부족한 신사업이나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라 육성이 필요한 신사업을 중앙 R&D 조직과 함께 관리한다. 전체 코닝 자원의 20%가 중앙에 배치된다. 일례로 의약품 유리용기인 밸러 글라스(Valor Glass) 사업이 있다. 기존 코닝의 생명공학 사업부에서 시작했지만 바이오·제약 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생명공학 사업부에서 감당하기 힘들어져 중앙 조직으로 이관했다. 사업부는 GDI(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위한 가솔린 미립자 필터 비즈니스와 같은 아이디어를 맡는다. 학습곡선의 상단에 위치해 시장과 기술지식이 충분히 축적된 디스플레이, 통신기술, 생명공학 실험용기는 사업부에서 담당한다. 사업부 배치 자원 비중은 80%다

-양손잡이(ambidextrous) 혁신조직화의 실현 같은데 8대2로 비중을 나눈 이유는 무엇인가.
▶사업부는 '실행'(execution)을 담당한다. 양손잡이 조직이론에서는 '활용'(exploitation)에 해당한다. R&D 중심의 '중앙'은 성장을 담당한다. 양손잡이 조직이론에서는 '탐색'(exploration)에 해당된다. 그리고 두 부문 모두 '집중'을 공통분모로 한다. 비중은 코닝의 비즈니스 구조에 기인한다. 시장 1~2위 지배자의 경우 신제품 출시 성공률이 70%에 이른다. 그러나 후발주자는 7%에 그친다. 코닝은 기존 사업부가 각 영역에서 1~2위다. 따라서 시장 지위가 있고 고객이 있다. 이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전략에서 나온 비중인 셈이다.

-혁신 제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질서 있게 성과를 도출하는 방법론이 있는가?
▶전략적 혁신 프레임워크를 철저히 따른다. 3(핵심기술 3가지)-4(4가지 생산공정)-5(5가지 시장 플랫폼) 원칙이다. 근본철학은 '재사용'(reuse), '재목적화'(repurpose), '재적용'(reapply)이다. 3가지 핵심기술은 유리, 광물리학, 세라믹이다. 4가지 생산공정은 증기증착(광섬유 생산방식), 퓨전공정(정밀유리 생산방식), 정밀성형(생명공학 실험용기), 압출공법(배기가스저감장치용 세라믹 담체와 필터)다. 시장 플랫폼은 광통신, 모바일 가전, 디스플레이, 자동차, 생명공학용기 분야다. 즉 핵심기술에서 시작해 우리가 강점을 지닌 4가지 공정을 중심으로 5가지 시장분야에서 시장이 원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핵심역량과 핵심사업 인접에서 시장을 개척하기 때문에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투자의 80%는 최소 2개의 핵심역량이 결합된 부분에 투자함으로써 기술혁신의 성공률을 극대화하고, 기존자산의 활용을 통해 혁신 비용을 줄이고 있다. 이러한 역량의 상호결합을 통해 더욱 강력하고 지속가능한 경쟁장벽(competitive barrier)을 구축하고 있다.

-기존 성장 공식에 갇힐 수도 있었을텐데.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방식이 3가지다. 우선 내부 리서치다. 외부고객이나 잠재고객의 목소리도 항상 귀기울인다. 특히 전방고객과 협력사들이 해결하고 싶어하는 문제를 쉽게 넘기지 않는다. 내부 프로세스 개선 과정에서 튀어나온 창의적 기술도 기회로 만든다. 이것을 모두 따라잡는 것으로도 전사 혁신의 기회는 많다. 사업부나 중앙에서 별도로 관리하는 것에 대한 원천 소스를 충분히 감당한다. '성장시키고 인력을 집중해야 할 섹터는 어디인가'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데 이것이 나의 주요 임무다.

-혁신 과정에서 실패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새로운 혁신 시도 때 항상 '가설'부터 수립한다. 그리고 가설을 검증할 때까지 90일의 계획된 시간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실패가 있으면 최대한 빨리 드러나도록 한다. 코닝 직원들은 실패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하고 중단될 때까지 최대 4주 안에 끝을 낸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 코닝연구소 도서관에 보관한다.

새로운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과거 연구를 찾을 때마다 마치 인류학자가 된 것 같다. 찾아보면 유적이 나온다. 층층이 쌓인 혁신, 실패로 끝난 시도, 그 과정에 누적된 것들이 투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의 흐름, 팀들이 일하는 방식, 프로세스 개선까지 역사에서 다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코닝이다.

코닝에서는 사업부에 속하면서도 중앙에 파견돼 다양한 프로그램에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1개 프로그램에서 1~2년 전념할 수도 있고, 책임자로서 2개 이상 프로그램에 투입될 수도 있다. 다양한 산업군, 다양한 프로젝트에 능통해진다. 이것이 축적되면 상상 이상의 경험치를 지닌 인재가 되고, 세월이 쌓일수록 깊이를 더한다. 우리는 아흔 노인 은퇴자도 초대해 강연을 듣는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지속하게 만드는 이벤트가 있는가.
▶최근 생긴 이벤트를 설명하고 싶다. 지난해가 2회였고, 올해 3년째인데 '죽은 프로젝트 기념식'이다. 할로윈 행사 때 무대 위에서 중도하차한 프로젝트들을 기념한다. 해당 프로젝트 담당자들을 무대에 올려 실패로 얻은 교훈을 1장짜리 슬라이드로 만들어 발표하고 도움을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행사가 끝나면 모두 함께 다과를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비석을 세운다. 그런데 무덤에서 되살아나는 프로젝트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바일용 커버글라스로 알려진 '고릴라 글라스'(Gorilla Glass)다. 중단됐던 프로젝트가 2007년 스티브 잡스를 만나 재탄생했다.

-코닝엔 '1장 요약'(One-Pager)이라는 말이 있던데.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때 코닝은 굉장한 위기를 겪었다. 이미 은퇴한 창업주 후손 제임스 호튼을 다시 불러들였다. 호튼 회장은 경영위원회에서 "다들 누군가 해고될 거라 생각하겠죠? 둘러보니 닷컴버블을 모두가 겪고 있군요. 그것보다 결자해지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라고고 당부했다. 그때부터 모든 직원이 종이 1장에 사업내용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코닝에서는 이것을 '1장 요약'이라고 하며 해마다 4만5000명에 달하는 전체 임직원이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코닝은 어떻게 비전을 그리는가.
▶비전을 그리기 위한 시간 축을 '1(단기)+4(중기)'로 해서 5년으로 둔다. 경험칙상 향후 10년을 보고 비전을 세우면 성공률이 낮다. 너무 빨리 변화하기 때문이다. 1+4의 조합이 가장 성공률이 높았다. 이 시간 묶음 속에서 코닝만의 혁신 프레임워크와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를 활용해 새로운 미래를 그린다. 앞으로는 자동차 내외장재, 건축용 자재, 디스플레이, 바이오·제약 분야에서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인공지능, 로보틱스, 블록체인 등 신기술의 영향은 어떠한가.
▶인공지능을 활용해 생산공정부터 많은 프로세스를 코드화하고 있다. 특히 기계학습을 고객군 포착에서부터 시장진출 시점 축소를 위한 프로세스 개선까지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 그룹을 양성 중이다. 새로운 유리 조성을 개발하는데도 기계학습의 도움을 받고 있다.

◆코닝은 1851년 에이머리 호튼이 유리 전문 제조기업을 표방하며 설립했다.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를 감싸는 유리구에서부터 내열성과 내구성으로 유명한 파이렉스(PYREX), 브라운관 TV 유리까지 근대 이후 유리 대중화의 선구자이자 시장지배자였다. 현재 천체망원경 반사경에서부터 유인우주왕복선 유리창에 사용하는 특수유리, 통신망용 광섬유 등 유리와 관련된 산업소재 분야의 리더다. 손상에 강한 고릴라 글라스 등 스마트폰을 비롯해 각종 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 공급자이며 생명공학, 환경분야에 적용 가능한 소재와 유리, 광물리학, 세라믹소재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마틴 커랜 총괄부사장은 1984년 코닝에 입사한 이래 제조, 재무, 마케팅을 두루 거치며 성장한 '코닝맨'이다. 케이블 시스템 하드웨어, 장비, 광섬유 사업부 등의 수석부사장을 거쳐 2012년 8월 CIO로 임명됐다. 노터데임대(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재무를 전공했으며 버지니아대 다든 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