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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AI' 이끌 슈퍼컴 6호기 온다…"AI·바이오, 시대적 흐름"

[2025 키플랫폼 키맨 인터뷰] 이식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

대전=박건희 | 2025.04.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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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KISTI 원장 /사진=KISTI

우리나라 AI(인공지능) 연구계가 애타게 기다려온 핵심 인프라가 온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 6호기다. 내년부터 국내 연구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무엇보다 슈퍼컴 6호기 성능의 98%는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에서 나온다. 슈퍼컴 6호기가 LLM(거대언어모델) 학습 등 AI연구에 특화된 인프라로 자리잡는다는 의미다.

고성능 GPU는 AI개발의 필수 자산이다. 오픈AI의 챗GPT가 등장한 후 글로벌 빅테크(대형 IT기업)는 앞다퉈 생성형 AI개발 경쟁에 뛰어들었고 GPU 가격도 천정부지로 뛰었다. 중국의 딥시크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GPU를 사용해 화제가 됐지만 양으로 따지면 이 역시 2000개 이상의 GPU가 쓰인 학습결과였다. 당시 국내 연구계에선 "GPU 5개조차도 수급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식 KISTI 원장(사진)은 "슈퍼컴 인프라를 통해 획기적인 AI 아이디어를 갖고 있음에도 이를 구현해볼 기반이 없어 애를 먹던 우리 연구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했다.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25 키플랫폼'(K.E.Y. PLATFORM 2025)에 '키맨'으로 서는 이 원장을 만나 AI 연구 인프라를 통해 한국에 찾아올 혁신의 방향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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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초고성능컴퓨터 도입 후 성과 /사진=KISTI

-슈퍼컴 6호기 진행상황이 어떠한가요.
▶GPU를 공급하는 해외업체와 최종협상 중입니다. 현재 원/달러 환율에 변동세가 있어 추이를 지켜보는 중이지만 중요한 협상 내용은 대부분 마무리됐습니다.

-6호기는 이전 세대 슈퍼컴과 달리 GPU 위주로 구성됐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기존 슈퍼컴은 한계가 분명한 CPU(중앙처리장치) 위주였습니다. CPU 기반의 컴퓨터는 성능을 높일수록 규모가 커집니다. 열을 식히는 냉각장치도 필요하고 장치들이 들어갈 건물도 몇 채 더 지어야 합니다. 전기도 많이 먹죠. 이에 비해 GPU는 전기효율과 성능이 높습니다. GPU 활용은 전세계적 흐름입니다. 특히 AI가 급성장하는 지금 시점에는 더욱 그렇죠. 챗GPT 등장 후 세상이 바뀌어버렸습니다. 현시대의 R&D(연구·개발)는 AI, 시뮬레이션, 데이터 분석이라는 3개 영역이 한꺼번에 작동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슈퍼컴 6호기는 이 수요를 감당할 핵심 인프라가 될 것입니다.

-국내 AI 연구계가 특히 애타게 기다렸다는데 왜 그런가요.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많은 연구자가 AI 인프라 부재로 갖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AI개발은 대부분 장비와 자금력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GPU의 가격이 비싸 개별 연구자는 물론 대학조차 스스로 연구 인프라를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예컨대 LLM 개발은 GPU 수천, 수만 장을 몇 달간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가능합니다. 우리 연구자는 H100 4장도 구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억대 예산을 인프라 구축에만 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인프라 수준에 맞는 연구밖에 할 수 없습니다. 상상력에 제한이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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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KISTI 원장 /사진=KISTI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도입 후 어떤 점이 바뀔까요.
▶연구자의 자유도가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공공자원이 없는 연구자의 선택지는 2가지입니다. 스스로 컴퓨터를 구입하거나 비싼 값을 지불하고 해외기업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컴퓨터 유지·보수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후자는 이에 더해 데이터 저장과 관리를 해외기업에 위탁하게 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KISTI의 고성능 슈퍼컴 인프라는 연구자가 무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단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는 만큼 연구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연구생태계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1년 내 논문이나 특허라는 명확한 성과를 내야 합니다. 슈퍼컴 6호기는 대규모 언어학습에 강점을 가질 겁니다. AI개발에서 시작해 배터리, 신약, 신소재 개발까지 다방면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는 분야가 있나요.
▶이제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영역을 선점해 경쟁력을 유지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정말 잘하고 산업 가능성도 높은 기술을 뽑아내야 합니다. 유망분야를 하나 꼽자면 '바이오'입니다. 바이오와 AI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죠. AI는 단백질 구조 분석 및 설계에 특히 강합니다. 유전체 분석, 신약개발 등 바이오분야가 지금보다 훨씬 가속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양자컴퓨터의 시너지 가능성은.
▶양자컴과 슈퍼컴은 각자 강점이 다릅니다. 둘 중 하나가 서로를 대체할 수 없죠. KISTI는 '하이브리드 컴퓨팅'에 주목합니다. 슈퍼컴과 양자컴을 연결해 각자의 장점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KISTI가 이미 슈퍼컴을 보유한 만큼 앞으로 양자컴 장비를 구축해 하이브리드 컴퓨팅의 성능을 확인하고 실제 R&D에서 쓰일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마련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미 양자컴을 모사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인 '에뮬레이터'를 자체개발해 하이브리드 컴퓨팅 시대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AI시대, KISTI가 가야 할 방향과 역할은 무엇인가요.
▶KISTI는 고성능 컴퓨팅과 데이터 분석기술이라는 인프라를 구축해 국내 연구자가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여기서 더 나가 '대체 불가능한' 연구기관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AI시대에서도 KISTI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