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다수 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을 우리나라의 '성장판'이 열려있는 마지막 시기로 보고 있다. 이 '마지막 5년' 동안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은 기업들의 치밀하면서도 과감한 '혁신'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국내 기업들에 적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혁신 전략을 찾기 위해 혁신에 성공한 독일 중견기업(미텔슈탄트)을 비롯한 유럽, 미국, 일본 등 전세계 100대 기업을 심층 취재, 분석한다. 현지에서 이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을 만나 깊이있는 경험을 끌어내고 한국 기업에 활용할 수 있는 혁신의 '정수'(精髓)를 뽑아낼 예정이다. 산업연구원, IBK기업은행경제연구소, 독일 드로기그룹, 롤랜드버거 스트래티지 컨설턴츠 등과 공동연구를 통해 한국기업들을 위한 '혁신의 황금법칙'도 찾아내 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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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바이오닉스가 하반신 마비환자들이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든 웨어러블 로봇 '엑소'. /사진제공: 엑소바이오닉스 |
의학적으로 걸을 수 없는 그를 걷게 해준 이 로봇을 만든 회사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 '엑소바이오닉스(Ekso Bionics)'.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 즉 입는 로봇을 만드는 회사이다. 제품명은 '엑소'.
폴 새커가 이날 입고 일어선 로봇외골격은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만한 발명품 같지만, 이미 질병과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2500여명의 장애인들이 이 제품을 입고 걷고 있다. 그냥 발명품이 아니라 시장을 만든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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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 안골드 엑소바이오닉스 공동창업자 겸 CTO는 "인간한계를 넘어서는 혁신을 웨어러블 로봇을 통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리치몬드=유병률기자 |
이 로봇외골격을 입는 데 드는 시간은 5분. 숙달되면 2분이면 된다. 알루미늄과 티타늄으로 만들어졌는데 무게는 50파운드(23kg). 하지만 사용자들은 이런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빠르기는 시간당 1.6km이다. 하반신 마비환자들이 다시 걸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이 로봇외골격의 목표이기 때문에 전진만 가능하고 후진이나 계단 오르기, 좌우 급회전은 불가능하다. 이 제품을 꾸준히 사용하면 근력과 지구력을 높여줘서 결국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웨어러블 로봇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고, 세계최대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사와 로봇군복을 공동으로 개발중인 엑소 바이오닉스의 공동창업자인 러스 안골드(Russ Angold)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만나 공상과학을 어떻게 비즈니스로 만들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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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모빌 선수로 활동하다 사고로 다리가 마비된 폴 새커가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엑소를 이용해 걷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포브스 |
러스 안골드와 현재 CEO인 나탄 하딩은 원래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로봇연구실에서 사람들이 착용할 수 있는 로봇외골격을 연구했다. 로봇을 이용해 인간 한계에 도전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로봇외골격을 작동하는데 소요되는 배터리를 기존 5000와트에서 5와트로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수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다.
이런 기술 덕분에 곧이어 록히드마틴사와 공동으로 병사들을 위한 로봇외골격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수년전부터 록히드마틴사가 선보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헐크(HULC)'가 바로 이들의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것이다. 헐크는 병사들이 가방에서 꺼내 쉽게 착용할 수 있는 로봇외골격으로 90kg의 군장을 하고, 시간당 16km의 속도까지 달릴 수 있다. 부상병을 신속하게 옮길 수도 있고, 폭탄과 같은 무거운 장비로 쉽게 옮길 수 있는 수퍼맨 같은 파워를 병사들에게 제공하는. 입는 로봇이다.
하지만, 원천기술과 로봇군복을 개발했던 5년여 동안 이 회사에는 시장이 없었다. 그는 “처음 기술을 개발할 때는 우리가 공상과학에서나 나올만한 것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개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제품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2011년부터 하반신마비 환자들을 위한 로봇외골격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에게 서서히 시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거운 것을 옮길 수 있는 로봇외골격을 연구할 때였다. 해군에 있던 형이 사고로 다리가 마비됐다. 이걸 보면서 '걸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정말 다시는 걷지 못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들을 점진적으로 회복시켜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가진 기술로 이들을 도와주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용자가 70% 파워가 필요하면 70%를, 5% 파워가 필요하면 5%를 로봇외골격을 통해 지원해주면 결국 로봇외골격 없이도 다시 걷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해 회사이름을 버클리바이오닉스에서 엑소바이오닉스로 바꾸고,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하반신마비환자들을 위한 제품을 내놓았다. 이 회사가 개척한 시장은 재활치료 시장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의료회사가 아니다
이 회사가 판매하는 엑소 한대의 가격은 11만달러(약 1억2000만원). 개인이 구입해서 가정에서 쓰기에는 비싼 가격이다. 그래서 이 회사는 병원 등의 재활센터에 제품을 공급해서 하반신마비환자들이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만 130만명이 환자가 뇌졸중이나 사고 등으로 인한 마비증세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고, 미국과 유럽에는 모두 7000여개의 신경재활센터가 있다. 이 회사는 미국, 유럽, 멕시코 등의 40개 재활센터에 엑소를 공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판매한 엑소는 모두 45대, 사용자는 2500여명이다.
그는 "지금은 일주일에 3개씩 생산할 만큼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 또 제조에 쓰이는 소재가 고가가 아니기 때문에 가격은 지속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면서 "수년내 전 세계 100만명의 환자들이 다시 걸을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단지 의학용 디바이스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근력과 움직임을 증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래서 인간한계를 넘어서는 그런 혁신을 만들어내는 웨어러블 로봇회사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의료시장에 진출한지 1년여 만에 산업용, 일반상업용 웨어러블 로봇 시장 개척을 준비하고 있다. 무거운 것을 취급해야 하는 건설현장 근로자, 또는 산악장비 시장, 그리고 위험에 대처해야 하는 소방관이나 경찰관 등을 위한 아이언맨 수트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웨어러블 로봇을 응용할 수 있는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웨어러블 로봇을 통해 도울 수 있고, 삶을 바꿔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이다. 사고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 무겁고 위험한 장비를 안전하게 취급해야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고객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정확한 고객과 수요를 확인중이다. 산업용, 상업용 시장에서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을 특히 주시하고 있다. 조만간 로봇외골격이 산업용에서 쓰이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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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바이오닉스가 미 최대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사와 공동으로 개발중인 로봇군복 '헐크(HULC)' /사진제공:록히드마틴 |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 중인 기업은 이 회사 말고도 더 있다. 하지만, 실제 시장을 만들고 상품을 공급해서, 돈을 벌고 있는 곳은 이 회사가 세계적으로도 거의 유일하다. 다른 경쟁회사와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는 기술력보다는 시장개척 능력을 더 강조했다.
"우리는 재활의료시장을 개척하면서 우리를 위한 제품이 아닌 고객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고객들의 수요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확인하기 시작했다. 고객들을 위해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고 있는 것, 바로 이것이 다른 웨어러블 로봇회사들과의 차이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이 아닌 상품을 만들면서 우리는 벽을 넘어섰다"고도 말했다. "사실 버클리 연구실 시절, 우리는 아주 '쿨'한 제품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로봇 외골격이었다. 정말 '쿨'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객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술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이후 우리는 기술을 상품으로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재활센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상품을 내놓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벽을 넘어섰던 것이다."
그는 "구글글래스이든, 스마트와치이든, 우리가 만들고 있는 웨어러블 로봇이든,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사람들에게 수퍼파워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면서 "결국엔 진짜 아이언맨의 수트와 같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