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통의 독일 절삭기계 생산업체 렘(ROHM)에 다니고 있는 직원들의 미소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멀리 한국에서 날아 온 외국인 기자를 맞이하는 직원들은 여유가 있었다. 유명 글로벌 기업에 비해 외형은 작지만 세계 초일류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이다.
렘은 기계공구 및 부품업계의 '히든 챔피언'이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가족 소유의 개인회사인 탓에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 최고 제품 상당수가 렘의 제품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기술력·혁신성 바탕, '맞춤형' 제품 공급=단순한 기계부품이 아닌 공장자동화 설비 및 신산업 관련 부품 분야가 렘이 속한 업계의 새로운 승부처가 됐다. 현재 이 시장에서 렘, 슝크(Schunk), SMW 등 3대 업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렘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비책을 자신의 핵심가치에서 찾고 있다.
렘이 100년 넘게 지켜 온 기업의 핵심가치는 크게 3가지. △고품질 △다양성 △기술력과 혁신성으로 축약된다. 제조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다. 렘은 고객들에게 품질을 인정받아 시장에서 고급 제품으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중저가 제품 대신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고급 제품에 초점을 맞춘 전략은 현재 시점에서 낮은 가격을 무기로 하고 있는 중국산 제품들의 범람을 감안할 때 탁월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기업 경영전략 분석 프레임인 '밸류스틱'(Value Stick)을 통해 렘의 전략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수요부문에 있어 렘은 품질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세계 일류기업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들의 WTP(Willingness To Pay, 지급용의최고가격)은 상대적으로 높다. 매년 단가인하 압력은 존재하지만 고품질에 대한 프리미엄은 마진을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렘은 8개 주요 제품군의 생산 뿐 아니라 고객들의 특수한 요구에 따른 '맞춤형' 제품들도 만들고 있다. 이는 기술력과 혁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고객이 요구하는 특별한 제품을 더욱 좋은 방법으로 개발하기 위한 노력은 혁신으로 이어진다.
다양성은 제품 포트폴리오의 분산을 의미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리스크의 분산 역시 가능케 한다. 2002년~2005년 신재생 에너지 바람이 불었을 때 이 분야의 연간 시장 성장률은 20%를 웃돌았다. 렘의 관련 매출도 급등했다. 그러나 다른 분야의 매출이 줄어들면서 예년에 비해 전체적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는 렘을 위기로 몰고 갔다. 비용절감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감원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근무시간을 줄이고 일부는 교육을 시켰다. 당시 특수제작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지만 일반적인 기성 제품들은 성장세가 이어졌다. 다양성이 빛을 발한 사례다. 렘은 결국 어떤 경영 환경 속에서도 매년 3~5%의 성장률을 유지하는 기업이 됐다.
◇렘의 공정·공급망 혁신=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렘은 2007년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최대 4미터까지 원자재를 깎을 수 있는 초대형 절삭기계를 도입했다. 풍력발전소에 필요한 기계부품, 예를 들어 대형모터와 날개들을 연결할 때 필요한 부품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렘은 자체 기술을 활용해 이 같은 기계들을 스스로 만들었다. 새로운 산업 발전으로 시장에 신수요가 나타나면 과감한 투자를 통해 이를 선점하고 성장의 패달을 밟는 전략이다.
최근 렘은 전통적인 제조 기업에서 종합 서비스 업체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전 세계 고객들에게 단순히 상품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파트너로 삼아 더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렘은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세계 어느 지역에 있든지 애프터서비스(AS)를 제공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정자동화 혁신에도 적극적이다. 렘은 현재 공장 시스템이 대부분 유압 또는 공기압으로 가동되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렘이 바라보는 미래의 대안은 전기 구동 시스템이다. 지난 5년 전부터 전기적 구동이 가능한 시스템 연구에 매달려 왔다.
마르코 반자프 렘 수출담당 매니저는 "기존 유압 장비는 유지보수 비용이 높은 반면 전기 장치는 효율이 좋다"며 "전기적 구동이 이뤄진다면 제품 가격 또한 낮아지고 새로운 혁신적 제품들도 대거 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혁신으로 제품 가격이 낮아진다면 이는 수요혁신으로 이어져 고객층이 확대되는 선순환 구조로 연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