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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려는 공무원 옥죄는 '감사원 정책감사' 폐지해야"

[2017 키플랫폼: 리마스터링 코리아][인터뷰]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

정진우 조철희 김상희 | 2017.04.12 05:09

편집자주 |  '팬더모니엄'(대혼란, Pandemonium). 대한민국의 2017년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대한민국은 그동안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가 지금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키플랫폼(K.E.Y. PLATFORM)은 이런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을 오는 4월27~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에 앞서 지난 6개월 동안 키플랫폼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과 전략을 고민했던 국내·외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앞으로 한 달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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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완창 운동을 하면 어떨까요?"


30년 넘게 공직에서 일하며 혁신적 정책 아이디어를 펼쳐왔던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다보면 나라를 위해 무엇을 좀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국민통합의 불씨가 될 수 있고,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 전 장관은 지난 2008년부터 2년 간 중소기업청장을 지내면서 실제로 직원들이 직접 참여한 애국가 동영상을 만들었다. 권위주의적 색채는 일절 경계한, 대중적인 참여형 영상이었다. 전국 중소기업들에 애국가 동영상 캠페인을 확산시킬 고민도 했다. 그는 "회사 직원들이 애국가 영상 제작에 참여하고, 애국가를 부르고 들을 기회가 잦아지면 그들 중 몇 명은 오늘 나의 최선이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직을 떠난 뒤에도 국정 운영 시스템 혁신 등 국가 개혁을 고민 중인 홍 전 장관은 조기 대선을 앞두고 △여야 합의 규제개혁 TFT 설치 △감사원 정책감사 폐지 △대통령 주재 인구정책회의(가칭) 월례 개최 등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들을 제안했다. 공직 경험이 풍부한 만큼 아이디어 속에는 현장감이 살아 있었고, 실행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었다.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지난 10일 홍 전 장관을 만나 차기 정부의 국정혁신 과제와 해법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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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
▶박수 받는 지휘관이 필요하다. 전쟁의 승패는 병사들의 마음에 달렸다. 야전사령관은 부지런해야 하지만 최고사령관은 현명한 대신 한가로워야 한다. 대통령은 야전사령관인 장관들에 많은 것을 위임하고, 스스로 한가로워야 한다. 직접 업적을 남기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후세가 평가할 것이다.

-새 대통령은 정부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가.
▶차기 대통령은 일하는 정부의 프로젝트매니저(PM)이자 국민과 소통하는 대변인이 돼야 한다. 대통령이 '사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핵심사업을 성공시키고 싶고, 업적을 남기고 싶다면 더디더라도 여야 합의, 국민적 합의를 통해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의 정책이 아닌 국민의 정책'이라고 강조해야 한다. 교육 문제와 같은 경우 여야 합의체나 제3의 협의체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 누가 대통령이 돼도 바꾸지 못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필요한 문제도 있을텐데.
▶저출산·고령화의 인구 문제와 같이 국가 재난에 가까운 문제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책임지고 챙겨야 한다. 산업, 노동, 교육, 복지 등 모든 영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출만이 살길이었던 때 대통령이 매달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열었듯이, 이제는 대통령이 매달 '인구정책회의'(가칭)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각 부처가 어떤 정책을 펼쳐도 인구 문제를 가장 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다.

-규제개혁도 차기 정부의 중요한 과제로 지적된다. 어떤 해법이 있을까.
▶매 정부 규제를 '손톱 밑 가시'라고 했지만 제대로 개선하지 못했다. 혁명적인 규제완화·규제혁신이 있어야 한다. 여야가 합의해 TFT(태스크포스팀)를 만드는 등 공무원들이 소신있게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규제혁파의 핵심이다. 공무원들은 규제를 풀려고 할 때 문제 발생을 두려워 한다. 자신이 없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정책을 만들고, 규제는 저인망식으로 가져간다. 책임에서 벗어날 길을 만들어두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규제혁파가 어려운 것이다.

-감사원의 정책감사도 공무원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있는데.
▶감사원이 정책 전문성도 없는데 공무원들은 감사원 눈치를 본다. 규제를 풀려고 해도 감사원이 눈에 아른거려 안움직인다. 공무원들이 정책을 잘못 펼치면 대통령이 문책하고, 결과를 대통령이 책임지면 된다. 따라서 감사원의 정책감사는 폐지돼야 한다.

-2011년 지식경제부 장관 취임 때도 "집단적 타성을 타파하라"고 공무원들에게 당부한 바 있는데.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었다. 일례로 요점만 나열하면 되는 개조식 보고서 문화가 문제다. 개조식 사고는 책임지지 않는 사고다. 공무원들의 마인드가 여기서 생성된다. 서술식은 내용이 있어야 하지만 개조식은 내용이 없어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언어에 생각을 맞추게 되고, 비효율적이다.

-지금 제안하고 싶은 국정혁신 아이디어가 있다면.
▶여러 가지 중에서 소프트웨어적인 문제인데 외교·통상 분야에서 통역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봤다. 체면 문화 때문에 협상 대표들이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직접 써가며 서툴게 협상에 임할 때가 있다. 그러면 절대로 상대를 이길 수가 없다. 일본과 중국은 외교부장관들도 통역을 쓴다. 정부 내에 가칭 '국립통역원'과 같은 통역원 양성소를 둬, 정부가 유능한 통역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각국의 언어에 능통한 통역원들을 양성하면 정부 효율성도 올라가지만 일자리창출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