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다가올 미래는 혼합현실·혼종인간의 新문명 시대"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인터뷰 -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

조철희 | 2022.09.25 06:00

편집자주 |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새로운 한주를 준비하며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찾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일요일 아침의 지식충전소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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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 이미지 /사진=키플랫폼 자료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의 세계가 도처에 존재하고, 기계와 융합된 '혼종인간'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며, 보편적인 사실과 진리보다 개인의 욕망과 흥미가 더 중요한 세상. 이미 그 징후를 드러내고 있는, 다가올 미래상이다.

미래예측 전문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인 김문조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디지털 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적인 진화에 따라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간의 정신세계가 급변하고 있는 것을 포착해 이같은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동안 <융합문명론>, <과학기술과 한국사회의 미래>, <메가트렌드 코리아> 등의 저작을 펴내며 사회 변화와 미래 전망 연구를 지속해 온 김 교수는 최근 학술지 <사회와 이론>에 발표한 논문 <포스트소셜 사회론 서설: 미래사회의 조망, 난제 및 지적 대응>에선 "지난날과 양상을 달리하는 새로운 문명 시대가 태동하고 있다"며 신문명 시대의 세상을 '포스트소셜 사회'로 규정했다.

김 교수는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과의 인터뷰에서 "국내외에서 벌어진 당장의 변화들도 중요하겠지만 먼 미래를 내다보며 문명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미래를 직시한다면 기후변화와 같은 난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예측하는 미래에는 인간이 현실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지고, 인간이 아닌 동식물, 심지어 사물과도 자유롭게 상호작용할 수 있고, '진실'의 굴레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즉, 미래에는 현실, 인본주의, 진리라는 3가지 속박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개개인의 자유가 과거나 오늘날보다 더 확대될 수 있다.

김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사회 현실이 질적으로 변모해 인간이 신체적·물리적·규범적 한계를 초월한 상상을 통해 자신의 열망을 추구하려는 새로운 욕동이 발현할 개연성이 높아가고 있다"며 "자유분방한 상상을 통해 고답적 현실의 질곡을 넘어서고자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개인의 자유가 위협받지 말아야 한다고 연일 강조하는데 대해 "전 정권에서 임금 문제 등 경제 활동을 규제하는 등 국가적 관여와 통제가 컸기 때문에 자유 확대를 기치로 들고 나온 것 같다"며 "보편적 의미에서 개인적 자유의 신장은 근대사회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다름없이 중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내다본 미래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고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지, 또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 할지,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이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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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현실과 진리, 인간중심주의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질 미래


- 교수님께서 연구하신 미래상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주신다면 어떨까요.

▶우선 현실의 틀 자체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삶의 지배적인 플랫폼이 '실제 현실'이었는데, 이제 실제인지 가상인지 구별이 어려운 '혼합현실'이 태동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메타버스입니다. 게임만이 아니라 제조 생산, 기업 경영 등에 널리 적용되고 있지요. 메타버스가 확장될수록 현실 세계도 복합적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변화를 겪고 있는 인간도 변하고 있죠. 앞으로는 현생 인류만이 아니라 기계나 소프트웨어 등과 혼합되고 융합된, '순수 인간'이 아닌 '혼종 인간'이 산재할 것입니다. 이미 AI(인공지능)의 진화로 많이들 이런 미래를 예측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의식도 변화할 것입니다. 이전까진 사실, 진리, 진실을 추구하고 그것이 의식의 기반이었는데, 요즘은 진짜가 과연 중요한가, 라는 의구심이 점증하고 있습니다. 즐겁기만 하다면 가짜도 괜찮게 여기죠. 평소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 '본캐'(본캐릭터)보다 새로 부가된 자신의 모습을 뜻하는 '부캐'(부캐릭터)가 더 주목받는 최근 현상을 떠올려 보세요.

요즘엔 뉴스도 객관적인 사실을 엄정하게 전하겠다 하면 사람들이 외면합니다. 재미있는 '뉴스쇼'를 원하지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탈진실성·탈진정성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 현실, 인간, 진실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변화하는 것인지는 잠시 후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 전에 교수님께서 예측한 미래에는 인간이 결국 한정된 현실이나 인간중심주의, 진리의 속박에서 벗어나면서 과거나 오늘날보다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미래는 탈현실화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현실의 공간적·시간적 제약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또 탈인간화될 것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소통과 상호작용의 대상이 인간이 아닌 동물과 식물, 사물까지 널리 확장될 것입니다. 진실의 하중에서도 벗어날 것입니다. 확실치 않은 것도 얼마든지 거침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개인의 자유는 확대될 것입니다.

다만 내 자유가 커지면 남의 자유도 커지기 때문에 자유를 추구하는 타자와의 이해충돌로 오히려 개인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는 위험성도 커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종'을 경계해야 하며 '조율된 자유'를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실질적 자유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도 개인의 자유를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국정철학의 핵심으로 국내외 제시할 정도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선대부터 내려온 뿌리깊은 신조를 지니고 계신 것 같습니다. 특히 전 정권에서 임금 문제를 위시한 경제활동 등 여러 측면에서 국가적 관여와 통제가 엄격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은 자유를 대안적 기치로 들고 나온 것 같습니다. 보편적인 의미에서 자유의 신장은 현대사회에서도 근대적 발전 가치와 다름없이 중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앞서 말씀 드렸듯 원칙적으로 자유가 신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상태에서도 실질적으로 자유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는 자동적으로 주어지진 않습니다. 과도하게 주어진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나치즘이나 파시즘으로 귀결되었다는 비판이론가 에릭 프롬의 지적이 그렇거니와,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도 무분별한 여론이 국민 의식을 호도해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다수의 횡포'(Tyranny of Majority)를 민주적 정치운영의 함정으로 우려한 바 있지요.

따라서 윤 대통령과 정부는 그러한 부작용을 제어할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적 책무라고 생각합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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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은 '메타버스 뮤직 페스티벌'을 자사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서 연다고 27일 밝혔다. SK텔레콤은 이번 가상 콘서트에 100대 이상의 카메라로 인물의 360도 전방위를 동시에 촬영해 실사 기반 입체 영상을 만드는 볼류메트릭 기술을 활용했다. (SK텔레콤 제공) 2022.6.27/뉴스1



메타버스, 혼종인간, 호모 어패런투스


- 공간적·시간적 제약에서 벗어나는 탈현실화에 대해 논문에선 메타버스를 사례로 드셨는데요. 메타버스가 주류가 되는 시대가 과연 올 것인지, 가상세계인 메타버스가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과연 유용할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나 막 나온 직후에는 지금 같은 스마트 시대를 예견한 사람이 거의 없었지요.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지금은 사회 자체가 스마트화 하고 있지 않습니까.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아직은 좀 어색하지만 속도와 과정의 문제이지 메타버스의 시대로의 이행은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요즘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평범한 현실이 아닌 극적으로 가공된,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현실을 좋아합니다. 일례로 천재적인 두뇌와 동시에 자폐스펙트럼도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해 최근 시청자들 사이에서 '현실에 이런 변호사가 있냐' 하며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주인공 설정이 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좋아했습니다. 매우 드라마틱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틱한 현실이 펼쳐지는 세계가 메타버스입니다. 아직 어색하고 불편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정교성과 현실성을 강화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메타버스를 실제 현실을 방불케 하는 것은 단시일 내에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실제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초현실세계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어가는 요즘 가상세계가 진짜냐, 가짜냐고 묻는 것은 의미 없는 질문입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의 GPS를 우린 지금 자연스럽게 쓰고 있지만, 그것도 증강된 가상의 힘을 빌린 것입니다. 너무 익숙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못하고 쓰고 있죠. 메타버스처럼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을 적용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들이 우리 삶을 둘러쌀 것입니다.

- 인간과 기계의 결합, 혼종인간, 여전히 SF영화 이야기 같이 들리기도 하는데요.

▶1977년에 개봉된 <스타워즈> 첫 작품부터 우리는 이미 혼종인간들을 보았었죠. 사자 모습의 '츄바카'나 'R2-D2' 로봇 같은 것 말이죠. 요즘엔 사이보그 영화가 무척 많고, 그 영향력도 엄청납니다. 인간의 얼굴을 지닌 지능형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하는 <엑스 마키나>도 그렇거니와, 뇌에 금속을 이식한 사이보그가 주인공인 <티탄>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바로 전 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받았던 권위 있는 상이잖아요. <티탄>의 인기가 그 정도라는 것은 요즘 사람들에게 소위 '포스트휴먼'(현생 인류가 아닌 인간)에 관한 의식이 견고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더구나 몇 해 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때 인간이 이길 것이냐, 기계가 이길 것이냐가 관건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인간 대 기계의 2분법적 범주는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휴먼 컴퓨터 상호작용), 인간의 두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BCI(Brain-Computer Interface,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등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의 융합인지가 관건일 뿐, 인간과 기계의 융합은 가속화할 것입니다.

혼종인간으로의 변화 방향은 기본적으로 2가지입니다. 하나는 인간이 기계화되는 사이보그이고, 다른 하나는 기계가 인간화하는 AI 같은 지능화된 기계입니다. 궁극에는 가상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되는 혼합현실처럼, 인간인지 기계인지가 구분되거나 구분할 필요조차 없는 혼종인간이 속출할 것입니다.

- 사실이나 진실보다는 흥미가 더 중요한 시대. 요즘 미디어 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이미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진짜에 대한 과도한 애착을 좀 버려야 될 때가 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진실에 대한 기준이 흔들리고 있죠. 예를 들면 어떤 경제 정책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정책 추진 효과를 경제성장률만 보면 되는 건지, 후생과 복리를 두루 감안해야 하는 건지 진실 공방이 항상 일어납니다.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산지가 진실을 파헤쳤다지만 대중들은 거기서 진실이 무엇인지에 주목하기보다 어산지의 행동 자체를 하나의 흥미로운 사건으로 지켜보는 것이지요.

진실이 물러간 자리에 서사(내러티브)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사실 그대로의 사건보다는 사실은 아니지만 그럴듯한 서사가 흥미를 돋구게 됩니다. DNA가 발견됐을 때 대중들이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이유는 이중나선 구조와 같은 서사를 통한 설명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을 전하는 신문 보도와 방송 뉴스 역시 구독률과 시청률이 고전 중입니다. 대중들은 서사적 자극에 민감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뉴스를 흥미롭게 만들려면 쇼와 같은 내러티브 형식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짜뉴스도 이러한 탈진실화 경향에 따라 횡행하고 있지만 문제와 부작용이 많기 때문에 전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가짜뉴스는 허위 보도의 원천을 차단하고 뉴미디어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력과 활용력이 높아지면 제어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전달과 진위 확인을 중시하는 레거시 미디어도 보도의 의미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진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내러티브를 강조한 콘텐츠라든가 독자들의 흥미를 높이는 수단을 수용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탈진실성의 도전이 가장 크게 문제시되는 곳은 객관적 진리나 엄정한 진실을 요하는 과학계나 학술세계가 아닐까 합니다. "과학적 사실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으니까요.

- '재미'를 가장 중시하는 세대는 MZ세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이 진정성이 없다며 거부감을 갖는 기성세대들도 있습니다. MZ세대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경박단소(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형태)가 시대적 대세인데, 이를 태생적으로 체득한 게 MZ세대입니다. 지금의 MZ세대는 견고한 고체보다 자유도(degree of freedom)가 높은 액체나 기체, 분말, 구름, 연기 나아가 비트나 파동 같은 것을 새로운 사회체계의 메타포로 선호하는 듯합니다.

'진정한 친구' 같은 말도 요즘 꽤 부담스럽게 들릴 수도 있죠. MZ세대들은 재미있고, 때로는 좀 튀는 친구를 좋아합니다. 진정성이 시민적 덕목은 아니라는 의식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가볍고 발랄한 자기표현의 자유와 풍요로움이 긍정적 가치를 갖는 탈진정성 시대에는 성찰적 내면 대신에 타인의 욕망과 시선에 관심을 기울이는 '호모 어패런투스'(homo apparentus, 외면인)가 사회 전면에 대두할 것입니다. 심층적 내면보다 표층적 외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인데, 상황에 따라 외향을 바꿀 수 있는 변신 능력을 지닌 사람이 사회적으로 더 우대받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고객감동이나 고객만족을 위해 속내를 감추고 상냥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표리부동이 권장되는 감정노동자들이 그 전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요.

- 이제까지의 말씀에 따르면 앞으로는 결국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이 기존과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가상세계에선 우리가 꿈꾸는 것이 다 우리 앞에 보입니다. 그동안은 판타지는 단지 상상의 산물일 뿐이었는데 가상공간에선 상상이 곧 현실이 됩니다. 가상공간에선 스펙터클과 파노라마가 넘치고, 변조나 시간의 역전 등이 가능해 판타지를 경험하는 만족도가 매우 높을 것입니다. 인간이 심저에 억압돼 있던 욕망을 발현해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그런 개인의 무한정한 환상적인 욕구를 받아들일 만한 용량을 지닐 수 있는지는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간접체험을 통해 욕구를 충족시켜 포만감을 줄 수 있는 대안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획기적인 간접체험 방식이 나올 때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습니다. 특히 안방에 들어온 텔레비전이 엄청난 비주얼의 간접체험을 제공했죠.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는 간접체험이 급기야 일상화 됐습니다. 상상적이던 간접체험이 시각적으로 발전했고, 다음엔 일상적 간접체험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인간은 상상을 충족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상상을 간접체험하며 욕구를 충족하면 더 풍요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변증법적으로 합류해 상생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동향을 감안해 어떻게 살아가야 행복할지를 모색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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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범주, 여자친구 유주, 엔하이픈 희승이 인공지능(AI) 기술로 제작한 홀로그램을 통해 구현된 신해철(왼쪽)과 31일 오후 온라인을 통해 열린 '2021 뉴 이어스 이브 라이브(NEW YEAR'S EVE LIVE) Presented by 위버스'에서 협업 무대를 펼치고 있다. (빅히트레이블즈 제공) 2020.12.31/뉴스1



만물이 공생하는 포스트소셜 사회


- 교수님께선 '소통혁명'(communication revolution)이 새로운 문명시대를 불러오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지요?

▶농업혁명이 미개사회를 농경사회로, 산업혁명이 농경사회를 산업사회로, 정보혁명이 산업사회를 정보사회로 전화시켰다면, 뉴미디어에 의한 소통혁명은 융합사회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소통 주체가 다변화 됐고, 소통 대상이 확장됐으며, 소통 영역도 증폭됐습니다. 소통의 범역이 인간 세계를 넘어 자연과 사물의 세계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만유소통(萬有疏通)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소통의 대상을 넘어 소통 자체가 중요시 됩니다. 지금도 우리는 누군가와 소통할 때 스크린을 통해서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누군가와 직접 대면해 만나지 않아도 됩니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통해 SNS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유재석 같은 유명 연예인과도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이 소통의 주된 에이전트(대행자)가 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같은 경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P2P(Person to Person, 사람 대 사람)이 아니라 S2S(Screen to Screen, 혹은 Sensor to Sensor) 사회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사회화 과정도 바뀔 것이고, 사회적 학습 유형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또 소통의 대상이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어떤 비인간적 대상도 수용할 수 있습니다.

- 만물과 소통하는 세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찍부터 많은 걱정들을 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세계 경제가 장기 불황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지가 10년도 넘었는데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드라마틱한 반전이 잘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문명사적 변화로 인해 그러한 비관적 전망이 '불편한 진실'이라고 여깁니다.

AI를 비롯한 기계적 생산력이 인간의 고유한 노동력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사회가 전면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스태그네이션(장기적인 경제 침체)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이제 과거와 같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따라서 선제적 예측과 통찰로 사회체계의 틀을 어떻게 개조해야 할지를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예컨대, 비인간적인 생산력에 대해 상당히 심각하게 고려를 하고 대처를 해야 할 겁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건비가 올라 무인화가 많이 이뤄졌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이 고민의 시점을 크게 앞당겼습니다.

그러면 이제 과연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기계가 생산 노동을 대체한다면 인간은 놀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하지만 노는 활동에도 비인간이 활발히 동참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을 홀로그램으로 살려내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하지 않습니까.

어느 영역에서든 비인간의 활약을 막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 함께 섞여 일하고 놀아야 합니다. 전면적으로 공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 논문 <포스트소셜 사회론 서설>에서도 공생을 중요한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하셨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대처해야 하는지도 깨달을 수 있을 듯합니다. 기존의 인식틀을 전환해 실제로 만물과 공생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 문제를 한번 볼까요. 이것도 근본적으로 인간을 중심만으로 살아왔던데 따른 문제입니다. 에어컨을 틀지 말자거나 플라스틱 용기의 사용을 억제하자는 등의 소소한 쟁점을 넘어 탈인간중심적(de-anthropocentric) 사고를 감행할 때 해결의 관문이 열리는 문제입니다.

앞서 미래의 인간은 만물과 소통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연 보호에 애쓰는 것을 넘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지나날 생태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탈인간중심주의는 지금 우리 사고의 대전환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사물과도 소통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이 활짝 열린 소통혁명의 시대에 인간은 모든 형태의 타자와 벗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더구나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이 무한대로 촉진될 미래에는 여타 생명체나 사물과 같은 비인간도 인간 못지않게 배려하고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