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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백지 시위, 제2 천안문 사태가 될까?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글로벌 스캐너 #18 - "중국 백지시위"

최성근 김상희 | 2022.12.04 06:00

편집자주 |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새로운 한주를 준비하며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찾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일요일 아침의 지식충전소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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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백지 시위
최근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24일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으로 촉발된 시위는 이제 중국 16개 주요 도시와 50여 개 대학가로 번졌다. 일부 시위대는 "시진핑 물러나라", "공산당 물러나라" 등의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를 들고 시위에 참여해 이른바 '백지 시위'로 불리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번 시위를 적대 세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규정하고 SNS와 휴대전화 추적 등을 통해 시위 가담자에 대한 강경 진압에 나섰다. 외신은 백지 시위 확산으로 장기집권에 돌입한 시진핑 체제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며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정부가 가장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은 확산 일로에 있는 중국 백지 시위가 제2의 천안문 사태가 될 수 있을지 분석하고 향후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했다.



코로나 봉쇄정책으로 광범위한 반정부 시위 확산 중


6.4 항쟁이라고도 불리는 천안문 사태는 1989년 후야오방 사망 이후 천안문 광장 등지에서 북경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대와 인민이 전개한 반정부 시위를 등소평 정부가 유혈 진압한 사건이다.

1980년대 말 공산권에 불어온 개혁개방의 거센 물결 속에서 중국도 자본주의 체제 이행이 급속히 추진됐지만 관료의 부패와 인플레이션, 높은 실업으로 심각한 경제난이 발생했다. 부정부패 척결 요구가 높아진 가운데 당시 민주화 요구와 부패 척결에 호의적이었던 후야오방 당총서기가 4월 갑자기 사망하면서 베이징에서는 지식인들과 대학생,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후야오방과 함께 개혁파 일원인 자오쯔양 총서기가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투쟁 중이던 학생들을 접견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해산을 호소했지만 이후 자오쯔양마저 강경 보수파에 의해 물러나자 민주화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무장한 군인들과 탱크까지 동원한 무자비한 진압에 나섰다. 결국 3600명의 사망자와 6만 명의 부상자를 내고 6월 5일 천안문 광장은 계엄군에 의해 장악됐다.

이번에 확산하고 있는 백지 시위는 시민들에 의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라는 점에서 제2의 천안문 사태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시위대의 주된 불만은 중국 당국의 극단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에 있지만, 우루무치 화재 사건을 계기로 시진핑 정부와 공산당 독재에 대한 비판을 담은 반정부 시위로 격화한다.

한편 지난 11월 23일 허난성 정저우시에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내려지자 그동안 보너스 미지급 등으로 항의하던 폭스콘 노동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면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들은 코로나19 봉쇄선을 뚫고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폭스콘 노동자의 시위는 백지 시위와 더불어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반정부 시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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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진=이지혜
과거 천안문 사태는 베이징에서 학생과 언론인 등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시위였지만 이번 백지 시위의 경우 주요 도시 대학생들은 물론 제로 코로나 정책의 피해를 본 노동자와 중산층 등 다양한 시민들이 가세하고 있다. 특히 최근 축제 분위기로 고조된 월드컵 중계를 지켜보면서 여전히 극단적인 봉쇄 조치로 일관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에 대한 괴리감이 봉쇄 조치로 누적된 불만과 함께 터져 나올 경우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2030 젊은 세대가 SNS를 통해 반정부 시위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시위의 격화 요인으로 지적된다. 현재 시위대는 '봉쇄 해제'와 '시진핑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다가 공안에 폭행당하고 줄에 묶여 연행되는 모습을 촬영해 SNS로 국내외에 신속하게 공유한다. 당국이 강경 대응을 예고한 가운데 향후 사태 진압 과정에서 유혈 충돌이 발생할 경우 과거보다 생생하고 신속하게 영상이 공유되면서 반정부 시위는 한층 격화할 수 있다.



백지 시위, 천안문 사태와 근본적으로 성격 달라


백지 시위가 천안문 사태와는 속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안문 사태의 경우 개혁진영 리더인 후야오방의 사망과 자오쯔양 총서기 퇴진이 베이징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의 민주화와 정치 개혁에 대한 요구를 분출하는 계기가 됐다.

반면 백지 시위 시위대 요구는 당국의 코로나 봉쇄정책에 대한 반발이 주다. 봉쇄정책에 대한 반발은 근본적으로 공산당 독재를 부정하거나 정부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까지 격화하기는 어렵다. 극단적인 수준의 봉쇄 조치만 부분 완화해 줘도 시위 동력은 현저히 약화될 수 있다. 폭스콘의 경우에도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조치를 제안했고 과열 양상을 빚던 시위는 잠잠해졌다.

천안문 사태의 경우 대학생이 중심이 된 지식인층이 정부에 항거하는 조직적인 시민사회의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베이징 내 20여 개 대학 학생들은 임시 학생 연합회를 조직하고 정부의 언론 통제에 반대하는 무기한 파업과 단식농성까지 벌였다. 그러나 백지 시위의 경우 시위대의 정부에 대한 불만은 높지만 시위를 주도하는 조직화된 시민세력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시진핑 퇴진에 대한 요구도 시위 도중에 나온 산발적인 구호에 그칠 뿐 천안문 사태처럼 시위대 사이에 공유되는 명확한 정치적 지향점이나 가치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도 코로나 제로 정책에 도전하기 위한 여러 시위들이 서로 이질적이고 조직적이지도 않으며 시위를 주도하는 지도자가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향후 백지 시위가 더 큰 시위로 확산되거나 권위주의 통치자를 끌어내리기 위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저항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한다.



백지 시위 여파와 향후 전망


그럼에도 백지 시위의 국내외 확산에 중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최근 코로나19가 재확산 하면서 중국 정부도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확산되는 시위와 경제적 여파를 고려할 때 봉쇄 조치를 완화해야 하나 재확산을 막고 시진핑 정부의 치적을 위해서는 봉쇄 조치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제로 코로나 정책이 시진핑 정부의 핵심적인 성과로 자랑해온 만큼 민심에 후퇴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게다가 3연임을 통해 장기 독재 기반을 구축한 시진핑 주석은 백지 시위를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지난 홍콩 민주화 시위 때처럼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압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천안문 사태나 가깝게는 홍콩 민주화 시위를 경험한 지도부는 이번 시위가 위협적인 임계치에 도달하기 전에 진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국 정부는 관영 언론을 통해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위법행위를 결연히 타격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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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콘
만약 백지 시위가 조기 진압되거나 정부의 타협 등을 통해 누그러진다면 큰 혼란 없이 사태가 종식될 수 있다. 그러나 시위가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과열 양상을 띠는 가운데 무력을 통한 정부의 시위 진압으로 대규모 충돌이나 유혈사태가 발생할 경우 중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서 중국 노동자들의 시위가 확산될 경우 중국 내 생산거점을 둔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차질로 인해 가뜩이나 공급망 교란으로 충격에 빠진 글로벌 경제에 또 하나의 악재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애플은 지난 폭스콘 시위 사태로 인해 올해 아이폰 프로의 생산량이 600만 대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TS 롬바드의 로리 그린은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2023년 상반기까지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며 이 기간 실질 GDP 성장률은 1%를 초과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최근 분석도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할 경우 2023년 경제성장률은 예상보다 1% 포인트 가량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