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인공지능, 인간에 두려움 아닌 '자유' 선물"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인터뷰 - 김상균 경희대 교수

조철희 | 2023.10.01 05:50

편집자주 |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새로운 한주를 준비하며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찾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일요일 아침의 지식충전소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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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항상 인간의 삶을 바꿔놓았다. 산업혁명을 비롯해 과학기술이 추동한 근현대의 수많은 변화들에 이어 최근엔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나노 기술 등의 첨단기술이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것들을 현실에 구현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기술들의 속성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기술들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인공진화'(artificial evolution)가 급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인지과학자 김상균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인간은 인간의 선호와 목표에 따라 스스로 진화를 주도한다"며 "인공진화를 통해 인류는 육체와 정신을 다른 차원의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진화는 이미 날갯짓을 시작했기에 누군가에게는 오늘의 일이며 누군가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일 수 있지만 그 날개가 세상을 뒤덮는 날은 우리 모두의 예상보다 빨리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게임 인류>, <브레인 투어>, <기억 거래소> 등에서 자신의 연구 주제인 인간의 마음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왔다. 최근엔 기술을 통해 바라본 인류의 오늘과 내일을 이야기한 책 <초인류>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가 만든 기술은 이제 인간 진화를 넘어 지구, 모든 생명의 공진화(coevolution)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학자', '인간의 마음을 탐험하는 학자'인 김 교수는 학부 때 로보틱스를 공부했고 석사는 산업공학, 박사는 인지과학을 전공했다. 미국에서 교환교수를 할 때는 교육공학을 했다.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사업을 하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인지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김 교수를 서울 회기동 경희대 캠퍼스에서 만나, 인류 문명의 거대한 전환점에서 산업 혁신을 넘어 인류의 육체와 정신을 진화시키고 있는 첨단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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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교수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과학기술


인간 육체의 확장을 위한 △생명공학 △나노 기술 △사물인터넷 △로봇, 그리고 정신의 확장을 위한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메타버스, 이러한 기술들은 인간의 신체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 사회적 관계, 주변 세계와 상호작용하고 행동하는 방식 등 자연적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입니다.

심리학에선 허용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리액턴스'(reactance)라고 합니다. 자연적 한계는 인류의 리액턴스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 한계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안다고 주장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한계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들까지 그 한계선을 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잠재적으로 많은 것을 욕망하지만 오랫동안 그 욕망들은 숨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기술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욕구(need) 중심적이던 인류는 산업혁명기에 욕망(want)을 폭발시킬 수 있었습니다. 기원후 1700년 동안 GDP는 거의 증가하지 않고 인구만 늘었는데, 최근 300년 동안 기술 발전을 통해 1만배 가까운 GDP 성장을 했습니다.

인공진화는 매우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진화는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좋은 쪽을 바라보지만, 항상 좋아지는 쪽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면, 안 좋은 면이 다 있습니다. 인공진화의 산물 중 하나인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 보죠. 엄청난 편리함이 있지만 우리는 전화번호도 거의 못외우고 암기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무조건 다 좋아지는 쪽으로만 가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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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자유를 위한 과학기술


요즘 일상적으로 무선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학생들이나 젊은 직장인들이 많죠. 심지어 근무시간에 무선이어폰을 꼽고 일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뜻은 나의 소리와 공간을 방해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리와 공간을 확실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지배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나의 소리, 나의 공간을 갖기 힘듭니다.

인간이 가진 욕망 중 굉장히 강한 게 독립과 통제입니다.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 그런 게 독립입니다. 통제는 무엇이냐면,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경우엔 독립된 공간을 가질 수는 있지만 통제까지는 불가능한데, 엘리베이터나 주차장이나 여러 부분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젊은이들이 무선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것은 독립과 통제의 욕망을 기술이 채워주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런 게 좋은 것인지는, 역시 고민이 듭니다. 내 소리와 공간에 대한 욕망을 기술로 채우는 것이 과연 인간에게 좋은 일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에 지배받는 게 아니라 기술을 통해서 각자가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자기 주도권을 가져야 합니다. 인공진화를 통해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나를 세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맞추도록 할 수 있습니다. 각자가 삶의 주인공이 돼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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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교수 저서 <초인류> 표지


두려움 아닌 자유 가져다줄 인공지능


일자리 소멸 등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은데, 사람들이 실제로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사고 능력을 인공지능이 갖는 것입니다. 생각을 대신해 주는 것 같기 때문에 두려운 거죠. 사실 로봇청소기처럼 몸 쓰는 기계는 인간이 편하게 생각합니다. 정신과 육체를 나누고 정신을 훨씬 더 높게 보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기계가 그 중요한 정신을 갖는 것 같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제시한 과업만 수행할 뿐입니다. 일단 인공지능은 인간과 달리 감정과 욕망이 없습니다. 감정이나 욕망이 있는 것처럼 인간이 의도적으로 인공지능을 모사시킬 수 있겠지만 인공지능 스스로 감정과 욕망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슬픔에 빠지면 말을 잇기 힘들지만 챗GPT 같은 인공지능은 그럴 일이 없습니다. 인풋을 주면 프로세스에 따라 아웃풋을 낼 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인공지능이나 기계에 판단을 의존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예컨대 자동차 주행 시 블랙박스가 운전자의 안면을 인식해 졸음 등 신체 이상 가능성이나 과속 시 징후 등을 판단, 위험을 사전에 제어할 수 있다고 해도 60~70%의 사람들은 이런 기술을 도입하기는 싫다고 반응합니다. '기계가 나의 판단에 개입하는 건 싫다', '모든 결정은 인간이 내려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정말 모든 결정을 인간이 내리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듭니다. 인간이 현명하게 판단하지 못하는 것을 기계에 물어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기계는 사실 인류가 축적해 온 문헌의 집합체이거든요. 인류의 지식을 다 모아놓은 것입니다. 즉, 기계에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누적된 지식에 물어보는 셈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감정과 욕망이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 리도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우리도 인간의 감정과 욕망의 근원을 잘 모르거든요. 우리가 모르는 걸 기계에 어떻게 만들겠어요.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가 원하는 부분에서 머리 쓰는 일을 인공지능에 맡기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유를, 자유를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거죠. 많은 직장인들이 하기 싫은 업무 반복적인 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인공지능에 맡기면 자신 원하는 부분에 머리를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LLM(Large language model·대형 언어 모델)이 당장 우리한테 위협적으로 다가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선택해 머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10가지 일 중에 5가지를 LLM으로 대체하면 다른 행복한 일을 할 기회가 생깁니다. 이같은 변화를 계기로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에 대해 다시 돌아보고, 특히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부분을 업에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없던 분야를 발굴하고 창조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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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 맨앞에 서 있는 우리, 앞으로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 있어


급변하는 환경에서 가장 큰 위험은 어제의 습성으로 내일을 살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진화하는 환경에선 어떤 자연의 서식지도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물이 마르거나 다른 생명체가 생겨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바뀐 환경을 원망해 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환경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대부분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을 놓고 미래를 그리는데, 문제는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납니다. 어제 배웠던 것을 내일 쓰겠다거나, 2년 전에 했던 것을 1년 후에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버려야 합니다.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의 맨 앞부분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30만년 전에 시작됐는데, 앞으로 인류가 언제까지 살아갈 것이냐를 계산해 보면 수십억 년의 역사를 더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태어났던 인류가 약 1200억명인데 앞으로 태어날 후손은 11경(1경=1만조)명이 넘습니다. 그런 우리가 지금까지 많은 걸 발견했다고 보기엔 너무 오만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