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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성공한 브릭스 정상회의…한계도 명확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글로벌 스캐너 #96_"브릭스 정상회의"

김상희 최성근 | 2024.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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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각) 러시아연방 타타르공화국 수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환영 만찬 중 환영사를 하고 있다. 2024.10.23. /사진=민경찬
지난 22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회의에 글로벌 사우스(저위도·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국가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서방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맞서 다극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대안적 질서를 모색할 것을 표방했다. 그러나 거창한 대의에도 불구하고 브릭스가 추구하는 목표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다.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은 브릭스 정상회의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봤다.



글로벌 사우스 모여든 브릭스, 흥행에는 성공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는 24개국 정상급 인사를 포함해 총 36개국 대표들과 유엔 사무총장까지 참석하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브릭스는 지난해 기존 5개국에서 이집트, UAE, 에티오피아, 이란이 새 회원국으로 참여해 9개국으로 몸집이 커졌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의 40여 개의 글로벌 사우스가 브릭스 가입 의향을 밝힌 만큼 향후 회원국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공동선언인 '카잔 선언'을 발표한 것은 상징적 성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유엔과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의 포괄적인 개혁, 서방의 제재 해제, 이란 핵 협상 복원 등을 요구함으로써 서방 주도 국제질서에 문제를 제기하고 글로벌 사우스가 동참하는 다극화된 질서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러시아가 제안한 브릭스 곡물거래소 창설도 정상들의 지지를 받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브릭스 국가들은 세계 최대의 곡물, 콩, 유채 생산국"이라며 곡물거래소가 부당한 외부 간섭, 투기, 인위적 식품난 조성 기도로부터 각국의 시장을 보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향후 석유, 가스, 금속 등 상품 거래 시장으로 확대해 자원부국인 브릭스가 세계 상품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회원국 간 공동 국제결제 시스템 창설과 무역거래에서 지역화폐 사용을 지지한다는 뜻도 밝혔다. 브릭스 단일 통화나 디지털 화폐 사용까지는 거론하지 못했지만, 달러화 의존에서 벗어나 새로운 투자 플랫폼을 구축하고 증권 거래와 보험 등 금융 분야 협력, 독자적인 결제 시스템 구축 시도를 지속하겠단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가 글로벌 사우스의 동참을 이끌어 내면서 흥행에 성공한 이유에 대해 미중 갈등구조가 심화하고 미국 패권주의가 약화한 데서 찾고 있다.

홍성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아프리카·남미 팀장은 "최근 브릭스가 외연을 확장하게 된 것은 미중 경쟁구도의 연장선으로 보이며, 그 확장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미중 경쟁구도가 심화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엄구호 한양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는 "최근 브릭스와 글로벌 사우스가 부상한 것은 그 자체의 힘이 강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회가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두고 푸틴이 이란을 지지하고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이스라엘과 네타냐후를 비판한 것도 결국은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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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현지시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 중 비공식 만찬에 앞서 정상들과 콘서트에 참석을 하고 있다. 2024.10.23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카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브릭스의 한계, 동상이몽을 꿈꾸는 글로벌 사우스


브릭스에 모인 글로벌 사우스는 1955년에 열린 반둥회의를 떠올리게 한다. 반둥회의는 냉전시대에 어느 진영에 속하지 않고 독자노선을 걷기로 천명한 제3세계 국가들의 회의체로서 이후 비동맹 운동의 모태가 됐다. 이들은 유엔 헌장을 기초로 인종·민족·국가를 넘어선 평등과 영토주권 존중, 내정불간섭, 평화공존 등을 골자로 한 10대 원칙을 제시해 국제사회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비동맹주의는 이후 국제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제3세계 국가들의 기본적인 외교노선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글로벌 사우스가 브릭스에 모여든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는 평가다.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과 서방세계가 주도하는 현재의 국제질서가 문제가 있고 변화와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갖고 있다는 이유다. 특히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백신 공급을 제한했는데 그로 인해 백신을 공급받지 못한 글로벌 사우스 사이에서 불만이 크게 고조됐다.

엄 교수는 "글로벌 사우스는 어느 편을 든다기보다 오히려 강대국 간의 경쟁구도가 자신들이 입지를 넓힐 수 있다는 기회주의적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국제질서의 다극화와 함께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경제 흐름과 글로벌 거버넌스 변화의 필요성 등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반둥회의와 비교할 때 브릭스에 모인 글로벌사우스는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이질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반둥회의는 비동맹주의라는 분명한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중심으로 연대를 추구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제3세계의 영향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브릭스와 글로벌 사우스는 그러한 확고한 공동의 목표를 찾아보긴 어렵다. 이들 글로벌 사우스는 공동의 가치보다 경제적인 실익을 얻는 게 주된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브릭스 회원국 간 정치적 이해관계도 크게 상반된다. 미국과 경쟁 또는 대립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브릭스를 통해 확실한 반미 연대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지난해 미국과 대립하는 이란의 회원국 가입이 러시아의 강력한 후원 속에 이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인도의 경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에 가입돼 있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경제성장을 위해 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반서방 블록화로 치우치면 곤란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홍 팀장은 "브릭스에 참여하기 원하는 글로벌 사우스 가운데 아세안의 경우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힘을 기울이는 곳이며, 중남미는 지리적으로 중러의 접근을 미국의 안보적 차원에서 민감하게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브릭스와 글로벌 사우스가 지금처럼 확대될지도 알 수 없고 미국이 이를 방관할지도 알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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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현지시각) 러시아연방 타타르공화국 수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환영 만찬 중 건배를 들고 있다. 2024.10.23. /사진=민경찬

회원국 간 분쟁과 갈등도 적지 않은 장애요인이다. 중국과 인도는 최근까지 국경분쟁으로 유혈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날선 대립 관계를 지속했다. 이번 카잔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모디 인도 총리는 정상회담을 갖고 국경지대의 평화 정착 방안에 합의했지만 1914년 이후 지속된 분쟁이 근본적으로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새롭게 가입한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역시 나일강 지역을 둘러싼 분쟁을 지속하고 있다.

홍 팀장은 "실제로 경제적 이득이 없다면 글로벌 사우스의 브릭스 동참은 어렵다고 본다. 현재 글로벌 사우스가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고는 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확실한 경제적 인센티브가 없다면 협력구조가 지속되긴 어려워 보인다. 만약 브릭스가 자국 간 통화 결제 확대, 나아가 탈달러와 단일 통화 구축까지 성공한다면 브릭스와 글로벌 사우스의 협력은 견고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