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하며 주장한 '양어장 관리 지원 시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의 해양조사선 온누리호가 현장 조사 중 촬영한 사진. / 사진=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서해 구조물 건설로 본격화된 중국의 서해공정 배경을 분석하고 효과적인 대응 방안을 살펴봤다.
제2 남중국해 조성하려는 회색지대 전략 우려 최근 중국이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고정 구조물을 설치하고, 항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 항공모함 동원 군사훈련까지 실시하면서 서해를 '제2 남중국해'로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PMZ는 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수역으로 한국과 중국은 지난 2000년 어업협정을 맺으면서 공동 관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중국은 2018년부터 연어 양식 시설이라면서 PMZ에 높이 70미터 규모의 철골구조 '선란 1, 2호'를 설치했다. 인근 해역에는 헬기 착륙장을 갖춘 시추시설과 함께 13개의 부표까지 설치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보가 서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회색지대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회색지대 전략은 군사력을 노골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정책적 모호성을 견지하면서 점진적인 행동을 통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다는 개념이다.
앞서 중국은 필리핀, 대만 등과 영토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조성하고 단계적으로 대공포와 미사일 등을 배치했다. 그러면서 해당 섬을 중국의 영토, 주변 해역은 영해라고 주장한 전력을 갖고 있다. 아직 명확한 해상경계선이 없는 서해 PMZ에서도 중국이 대형 구조물을 늘리고 향후 군사장비와 해군 등을 배치해 종국에는 영해권을 주장할 거란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은 유사시 미군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목적도 존재한다. 서해의 전략기지는 미중 충돌이 벌어질 경우 수도인 베이징과 해안 도시를 향한 미 해군의 진입과 한반도에 배치된 주한미군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의 남중국해 내해화 전략은 70년에 걸친 장기 프로세스로, 해군전력을 동원한 고도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이와 같은 단계적 회색지대 전략을 고스란히 서해 내해화 시도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 |
중국이 지난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한 '선란 2호'/사진=뉴스1(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
외교·비례대응·구조물 충돌…"다각도 검토와 복합적 대응 필요"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을 방관할 경우 한국의 해양주권이 침해될 뿐 아니라 한반도 안보환경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우선 중국이 구조물을 설치한 해역은 PMZ의 중간선 바깥 부분, 즉 한국의 관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최대 범위에서 벗어나 있어 법적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유엔 협약에 따르면 경계가 미확정된 PMZ에서는 어업활동을 하는 자국 국민과 어선에 대해서만 조치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먼저 한중 어업공동위원회나 한중 해양협력회의 등의 외교적 절차를 통해 중국의 위반행위에 대한 시정 요구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민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중국 구조물을 규제하는 일방적인 입법조치보다는 외교적 조율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만약 중국의 구조물이 감시나 정찰, 항로 방해 등 군사적 용도로 활용될 경우 한미일 안보 협의체 등 국제 공조를 통해 중국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PMZ 중간선 해역에 비슷한 해양 구조물을 설치하자는 일종의 '비례 대응 조치'도 제기된다. 국제법상 우리가 중국 시설물을 금지할 수 없듯이 중국도 우리 시설물을 금지할 근거가 없다. 해양이나 기상, 환경 등의 관측을 수행하는 해양과학조사기지나 대형 관측 부이(바다에 띄우는 인공구조물), 부유식 발전 시설을 설치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중국이 구조물을 군사기지화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군사적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찰위성, 해상초계기, 무인기 등 ISR(감시·정찰) 자산을 동원해 서해 PMZ에 대한 정보 수집 체계를 상시화하고, 해군과 해경의 연합 초계 활동으로 감시와 현장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미 간 정보 공유와 해상 합동훈련 등으로 서해 구조물을 단지 한중 간의 문제가 아닌 미중 전략 경쟁의 일환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필리핀이 남중국해에서 폐선박 등을 활용해 구조물에 충돌시킨 것처럼 보다 강력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1997년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무력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상륙함을 세컨드 토마스 암초에 고의로 좌초시킨 후 이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10여 명의 병력을 상주시키고 영해 방어선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동규 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은 "우리도 폐유조선이나 폐상선 등을 중국 구조물에 충돌시킨 후 이를 우연한 사고로 위장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며 "동시에 우리도 PMZ 내에 동일한 구조물을 만들어 중국처럼 유사시 군사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