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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 로이터=뉴스1) 김경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이란 전쟁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 2026.4.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워싱턴 로이터=뉴스1) 김경민 기자 |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이란 사태를 통해 드러난 미국 패권의 취약성을 짚어보고, 이를 계기로 확대된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을 살펴봤다.
미국…호르무즈 봉쇄 현실화·글로벌 리더십 약화 등 패권국 지위 손상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 향후 2~3주를 전쟁 시한으로 재확인하고, 이란에 강력한 타격을 가해 '석기시대'로 만들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초토화하고 사실상 정권 교체를 이뤘다며 승리에 가까운 입장을 내비쳤지만 오히려 전쟁을 통해 패권국의 지위가 손상됐다는 역설적인 평가가 나온다.
먼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동원한 군사작전에도 전쟁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지난 한 달여간 미국은 항모 전단과 첨단 미사일, 폭격기 등을 앞세워 이란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란 정권은 강경파가 장악했고, 그동안 위협에만 그쳤던 호르무즈 봉쇄가 현실화됐다.
지하에 은닉한 미사일 전력과 드론 부대의 무력화에도 실패했고,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이스라엘 및 주변 걸프 국가들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 핵무기 개발을 금지해 온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이란의 핵 개발 의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동의 미군 기지는 미국 패권의 상징적 거점이었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공격 표적으로 전락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 주요 미군 기지가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자폭 드론의 타격 대상이 됐고, 인근 민간 인프라까지 피해를 입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방공망도 이란의 저비용 미사일과 드론 공격 앞에 한계를 드러냈고, 무기 재고 부족으로 해외 동맹국에 배치된 전략 자산까지 빼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무엇보다 미국의 리더십과 국제적 위상이 크게 손상됐다는 평가다. 이란이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상선을 공격하자 국제 유가와 가스 가격이 급등하며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에 호위 군함 파견을 요청했지만 전쟁 명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거절당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중동으로 향하는 미군 항공기의 영공 통과조차 불허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산 에너지 수입국들에게 미국산 석유를 구매하거나 스스로 통행 문제를 해결하라며 전쟁 책임을 타국에 전가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제성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학과 교수는 "이란 사태는 아무리 미국이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한 국가를 굴복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면서 "과거엔 미군 주둔 자체가 가장 강력한 안전 보장책이었지만, 이제 미군 기지가 1차 타격 목표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미국 패권의 약점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짚었다.
| [카라지=AP/뉴시스] 3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 남서쪽 카라지의 신설 B1 교량이 전날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돼 있다. 2026.04.03. /사진=민경찬 |
중국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 능력을 입증했다. 중국의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는 33%에 달하지만, 러시아산(26%), 아프리카(19%), 미주 지역(14%) 등으로 선제적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해 중동산 원유 공백을 일정 부분 메울 수 있다는 평가다. 대규모 석탄 매장량과 빠르게 확충한 재생에너지, 전략 비축유 등을 기반으로 중동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할 완충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란과의 우호적 관계를 활용해 해상 운송망을 유지하는 동시에, 달러 중심의 원유 결제 시스템까지 흔들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란은 지난달 1일부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지만, 중국은 이란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자국 선박의 통과를 허가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란이 위안화 결제 국가의 유조선에 한해 통행을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달러화 결제 기반의 '페트로 달러'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사태는 미·중 전략 경쟁에서도 중국에 유리한 협상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전쟁으로 중국을 압박했지만, 중국이 희토류 등을 활용해 맞대응하면서 압박 강도는 상당히 낮아진 상황이었다. 여기에 미국이 이란 사태로 군사적·외교적 자원을 중동에 집중하면서 대중 압박은 한층 느슨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 연기를 요청한 것도 중국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이란 사태로 중국은 미국의 공세 압박으로부터 시간을 벌고 숨 돌릴 여유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은 미국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자제하면서도 이란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통해 대만 독립 반대와 연계된 전략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 (AFP=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호르무즈 해협에서 피격 당한 태국 화물선. 2026.03.11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AFP=뉴스1) 이지예 객원기자 |
이란 사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행 중인 러시아에게 군사적으로도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고유가로 재정 여력이 확대된 러시아는 병력과 무기 확충에 나서며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대규모 전력을 중동에 집중하면서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무기 재고가 줄었고,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대응할 방공망에도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외교적으로도 러시아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버팀목인 유럽의 지원 여력도 중동발 에너지 위기로 점차 고갈되고 있다. 오는 6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 패키지는 친러 성향의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의 반대로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유럽의 지원마저 끊길 경우 우크라이나는 전쟁 지속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러시아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종전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엄구호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러시아 경제는 유가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여서 이란 사태는 러시아에 가장 큰 호재로 작용했다"며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대러 제재는 약화되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에게 영토 포기 등을 포함한 종전 협상을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편 호르무즈 해협 위기로 북극항로가 주목받으면서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북극항로는 기존 대서양-인도태평양 항로보다 약 40% 거리를 단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항로의 대부분이 러시아 영해에 포함되는 만큼 개발과 이용에 있어 러시아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조은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호르무즈에서 북극으로: 이란 사태가 촉발한 유라시아 지정학 재편' 보고서에서 "이란 사태는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남방 회랑과 북방 대안 루트 사이에서 균형추가 이동하는 구조적 전환의 방아쇠를 당겼다"면서 "혼란이 장기화될수록 북극항로의 지정학적 가치는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