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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5년, 마지막 성장판을 열자②-1] 머니투데이-드로기그룹, 獨 253개 미텔슈탄트 기업문화 조사

기획·취재팀 | 2014.01.02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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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중견기업(미텔슈탄트·Mittelstand) '트럼프'(Trumpf)는 1923년 설립 이후 반세기 동안 공작기계 공구를 주로 만들어 큰 돈을 벌었다. 이 사업 만으로도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했지만 트럼프는 여기 만족하지 않았다. 1970년대 레이저 기술이 확산되기 시작하자 이 회사는 전격적으로 레이저 기술을 도입, 레이저 절삭공구를 개발해 새 시장을 개척하며 더 큰 성공을 이뤘다.

트럼프는 2000년대 들어서는 토요타의 '카이젠'(改善) 시스템을 도입해 기존 생산방식은 물론 사무관리 프로세스까지 단숨에 바꿨다. 그리고 최근에는 첨단의료 기구도 개발해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나섰다.

처음에 조그만 가게로 시작한 트럼프는 이처럼 혁신적인 조직문화를 바탕으로 현재 연매출 3조4000억원, 전세계 직원 수 약 1만명에 달하는 독일 최고의 중견기업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트럼프의 지속적이면서도 극적인 성장을 가능케 한 기업 문화의 특징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한 것, 둘째 대담하게 실행하는 것, 셋째 솔직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특히 소통과 관련, 트럼프는 '오픈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회사 내에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투명하고 직설적으로 소통하게 한다. 직원들이 상사 또는 동료들과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것은 트럼프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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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들에 대한 전략 컨설팅과 장기 투자를 병행하는 독일 드로기그룹이 지난해 머니투데이와 함께 253개 독일 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연구를 실시한 결과,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트럼프와 같은 기업 문화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혁신기업들이 가진 이 같은 핵심 DNA는 '혁신의 A·B·C'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민첩한 대응'(A·Agility), 둘째 '대담한 실행'(B·Boldness), 셋째 '투명하고 솔직한 소통'(C·Clarity)이다.

연구를 이끈 마이클 트램 드로기그룹 전략자문 대표는 "혁신기업들로부터 △빠른 의사결정 능력 △유연한 조직 구조 △민첩한 대응 능력 △솔직한 의사소통과 같은 조직 문화의 특성이 공통적으로 발견됐다"며 "이 같은 DNA를 갖고 있는 기업일수록 매출과 영업이익 등의 성장률도 높았다"고 말했다.

혁신의 'A'= 혁신기업들의 첫 번째 특징인 '민첩함'은 주로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다. 의사결정이 빨라 신기술 등을 수용할 때 신속하게 결정하고, 속도감 있게 실행한다. 또 실행을 철저히 관리해 실행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즉각적인 대책을 마련한다. 트램 대표는 "이런 조직들은 계획한 대응책들을 완벽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실행한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자동차 필터 생산업체 '만앤휴멜'(Mann+Hummel)은 기술과 제품의 변화가 빠른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특히 공기 필터는 트렌드에 민감한 최종 소비자들의 수요 변화에 발 맞춰야 하기 때문에 신기술 등에 대한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을 요구한다.

이 회사 한스요르그 허먼 부사장은 "자동차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빠른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며 "단순히 몇 가지만 빠른 것이 아니라 생산과 문제해결, 연구개발(R&D), 고객 관리 등 모든 분야가 함께 빨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의 'B'= 혁신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대담함'은 '무모함'과는 다르다. 충분한 검토를 거치면서도 일단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조직 전체가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가는 것이 바로 '대담한 실행'이다.

대담한 실행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도출된 아이디어에 대한 강한 신뢰 △실패에 대한 용인 △합리적 보상 및 제재 △전 직원의 기업가적 마인드 고취 △공동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동기부여 △글로벌 시장 개척 의지 등이 필요하다.

특히 글로벌시장 개척에 대한 의지는 중요한 요소다. 트램 대표는 독일 혁신기업들의 성공 요소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을 강조했다. 그는 "이들은 아주 작은 도시에서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반드시 세계무대에 뛰어들려 한다"며 "최고경영자(CEO)부터 일반 직원들까지 회사의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성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대담하게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C'= 200년 역사의 필기구 생산업체 '스태들러'(Staedtler)는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수많은 아이디어 제품들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 기기의 확산에 맞춰 손가락이나 스마트 기기 전용 펜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내놨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끝없는 아이디어들이 필요하다는 것. 이 회사는 아이디어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조직 내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극단적으로 장려한다.

이 회사의 악셀 마르크스 경영이사는 "혁신은 구조화된 계획에서는 나오기 쉽지 않다"며 "마음껏 떠들고 시끄럽게 구는 미친 사람들에게서 혁신의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회사의 대표적인 혁신 제품들은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 하던 순간이나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불만을 토로하던 때, 심지어 고객이나 소비자들과 대화를 하던 순간 등에 나왔다.

독일 혁신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투명하고 개방적인 소통 문화를 갖고 있다. 독일의 한 혁신 중견기업 CEO는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허튼소리'(bullshit) 따윈 절대로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통 문화는 경영진으로부터 형성된다. 독일 혁신 중견기업의 CEO들은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면서 신뢰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또 이들은 정대로 직원들에게 '애매하게' 말하지 않는다. '확실한' 목표를 제시하고 '실질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이는 직원들이 회사의 '규정'(compliance)을 충실히 지키도록 하는 데에도 효과저이다.

한편 머니투데이와 드로기그룹의 이번 공동 조사연구는 지난 한 해 동안 독일의 253개 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건설 31개, 자동차 30개, 기계제조 25개, 금속가공 15개 업체 등이 조사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에는 연매출이 1억~2억5000 유로인 기업이 79개, 1억유로 미만인 기업이 77개였다. 참여 업체들 가운데 가족기업이 144개로 전체의 57%에 달한 것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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