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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5년, 마지막 성장판을 열자③-2] 밸류스틱으로 풀어본 SAP의 혁신전략

독일=임동욱 정진우 | 2014.01.03 06:30

편집자주 |  다수 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을 우리나라의 '성장판'이 열려있는 마지막 시기로 보고 있다. 이 '마지막 5년' 동안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은 기업들의 치밀하면서도 과감한 '혁신'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국내 기업들에 적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혁신 전략을 찾기 위해 혁신에 성공한 독일 중견기업(미텔슈탄트)을 비롯한 유럽, 미국, 일본 등 전세계 100대 기업을 심층 취재, 분석한다. 현지에서 이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을 만나 깊이있는 경험을 끌어내고 한국 기업에 활용할 수 있는 혁신의 '정수'(精髓)를 뽑아낼 예정이다. 산업연구원, IBK기업은행경제연구소, 독일 드로기그룹, 롤랜드버거 스트래티지 컨설턴츠 등과 공동연구를 통해 한국기업들을 위한 '혁신의 황금법칙'도 찾아내 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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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용 소프트웨어(SW) 업계의 공룡 SAP은 어떻게 민첩하고 스마트한 기업으로 변신하는 혁신을 이뤄냈을까.

SAP의 혁신을 기업 경영전략 분석 프레임인 '밸류스틱'으로 풀어봤다.

SAP은 작고 민첩하고 아이디어로 가득 찬 기업들과의 '가치 교환'을 선택했다.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제품 가격의 장벽을 낮춘 대신 고객들의 아이디어와 이들이 생산해 내는 빅데이터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활용하는 '윈-윈' 전략이다. 여기에는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SAP의 비용 모두를 동시에 줄일 수 있는 비밀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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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부분에 있어 SAP은 자본력이 약한 소규모 기업들의 '지불용의 최고가격'(WTP: Willingness To Pay)이 낮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활용됐다. SAP은 스마트 마이크로 기업들이 굳이 하드웨어 투자비용을 집행하지 않고도 자사의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Plug in Play' 형태의 비즈니스를 도입했다. 과거 소프트웨어 제공형태의 패키지 방식 대신 이용료 과금 형태의 맞춤형 솔루션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체 경영솔루션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려웠던 소규모 기업들도 SAP이 제공하는 계정 정보만을 가지고 최신의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높은 가격을 치르는 기존 고객, 즉 대기업에 집중됐던 기존 수익모델을 낮은 가격을 지불하지만 성장성이 높은 다수의 스마트 마이크로 기업으로 바꾼 혁신 전략이다.

새로운 고객들이 지불하는 가격은 낮아졌지만 SAP은 80%의 '사소한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는 '롱테일법칙'에 주목했다. 밸류스틱의 길이, 즉 개별 단위별 경제적 가치가 줄어들더라도 보다 많은 수의 스틱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를 합친 전체 가치는 과거보다 늘어난다.

아울러 SAP은 스마트한 작은 고객들을 통해 이들의 빅데이터를 얻고 미래 혁신을 위한 인사이트로 활용하고 있다. SAP이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종의 수를 24개 에서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를 포함한 26개로 확대하려고 하는 것도 이 같은 힘이다.

공정?공급망 혁신도 동시에 이뤄졌다. 2년 전부터 SAP은 제품개발 단계에서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을 혁신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모든 것은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작은 팀에서 나온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SAP은 디자인 싱킹을 통해 전사적 차원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구하고 있다. 단순한 기술혁신 중심이 아닌 제품 및 사업모델 차원의 혁신을 위한 노력이다.

이를 위해 SAP은 디자인 싱킹을 위한 별도의 독립적 공간을 마련하고 마케팅, 기술, 세일즈 등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들을 여기에 참여시키고 있다. 참여자 모두가 리더가 돼 개개인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문제해결의 방향을 찾는다. '최종 소비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 과제를 설정한 뒤 실행에 나서는 일련의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행가능성'(Feasibility)이다. 이를 위해 결론을 도출하기 전 반드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최종 소비자의 입장에서 테스트한다.

이 결과 SAP은 신제품의 시장출시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2010년 13.8개월에서 2012년 7.8개월로 획기적으로 줄였다.

외부의 기술을 받아들이는데도 적극적이었다. SAP은 차상균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팀이 개발한 인메모리 컴퓨팅 기술을 2005년 인수하고 6년간의 연구개발을 통해 차세대 주력 플랫폼 'SAP HANA(하나)'를 완성했다. 현재 SAP의 주력 최신 솔루션들은 모두 SAP 하나 플랫폼 상에서 구동된다. 하소 플래트너 SAP 공동창업자 겸 감독이사회 의장은 주주들에게 "우리의 성공의 중심에는 소프트웨어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기록한 SAP하나가 있다"고 말했다. 2012년 SAP하나의 매출액은 3억9200만 유로(한화 5700억원)로 전년 대비 142% 증가했다.

전 세계 20개 데이터센터 등을 운영하며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SAP은 에너지 사용량 감축에도 관심이 많다. 전 데이터 센터 내 서버 67%를 가상서버로 교체했고 화석연료 및 원자력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매입 외 상당량의 신재생에너지를 자체 태양광 발전설비를 통해 생산하고 있다. 2012년 SAP이 사용한 전기의 60%는 신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됐다. 2008년부터 SAP이 에너지 사용감축 노력으로 절약한 비용은 총 2억2000만 유로(3200억원)로 추산된다. 이 같은 노력은 환경을 중시하는 기업의 브랜드 스토리로 연결돼 수요혁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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