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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5년, 마지막 성장판을 열자] 산업용 레이저 기기 세계 1위 트럼프 ①

슈투트가르트(독일)=조철희 | 2014.01.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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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중견기업을 뜻하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의 사전적 의미는 ‘중간계급’(Middle Class)이다. 규모가 중견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독일 경제를 탄탄하게 받치는 ‘허리’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이들이 독일 고용의 60%, 국내총생산(GDP)의 50% 이상을 창출한다는 점에서다. 특히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이 대부분인 이들은 초일류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일 뿐 아니라 글로벌 산업의 허리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런 미텔슈탄트들이 ‘혁신’의 교범으로 삼는 기업이 있다. 바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 다칭엔에 본사를 둔 산업용 레이저 기기 세계 1위 기업 트럼프(TRUMPF GmbH+ Co. KG)다.

트럼프는 지난 2005년 유럽 최고 권위의 '유럽최고기업상'(Best of European Business Award) 혁신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트럼프가 5000개 이상의 일류 기업들을 물리치고 이 상을 받은 배경에는 매년 매출액의 8% 이상을 R&D(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점 외에도 ‘문제해결형 제품혁신’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일상적 공정혁신’이라는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혁신 본능'

‘혁신관리’의 대가인 제임스 어터백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로언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술기업의 혁신을 '제품혁신'과 '공정혁신'으로 나눈다. 그는 제품혁신의 성과가 두드러지는 시기와 공정혁신의 성과가 두드러지는 시기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제품의 생애주기, 기업이 속한 산업구조나 미래 환경의 변화에 따라 혁신이 나타나는 분야가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가 뛰어난 점은 각각의 시기에 필요한 분야의 혁신을 위해 적절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혁신을 선도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혁신 본능(Natural-born innovation) 기업’인 셈이다.

트럼프는 이로써 밸류스틱(Value stick) 상에서 '지불 용의 최고가격'(WTP: Willingness to pay)에 최대한 가깝게 가격을 책정하고, '납품 용의 최저가격'(WTS: Willingness to supply)에 최대한 근접하게 비용을 낮춤으로써 기업가치를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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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참여를 통한 문제해결형 수요혁신

트럼프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초정밀 전자회사 뿐 아니라 플랜트, 고부가가치 선박 등 초정밀 레이저 가공이 필요한 모든 기업들의 담당자들과 제조 프로세스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공유한다. 트럼프는 맞춤형 기술 개발, 애플리케이션 개발 뿐 아니라 아예 차세대 제품 생산 과정에도 고객사 담당자들을 참여시킨다.

단순히 고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만이 아니라 전방 고객의 미래 수요를 이해하고, 경영 메커니즘을 분석한 뒤 미래 고객에 더욱 좋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이 선순환하면 트럼프는 경쟁사들보다 한 발 앞선 제품력도 지니게 되고, 고객과의 신뢰도 굳건히 할 수 있으며 브랜드도 강화되는 ‘1석3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마티아스 카뮐러 사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유력 기업들과도 함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세계에 56개 지사를 두고 있는 트럼프는 지난 1997년 한국시장에 진출했다.

트럼프식 공정혁신의 매뉴얼 ‘SYNCHRO’

트럼프는 고객맞춤형 유연생산체계도 갖췄다. 1990년대 들어 토요타의 카이젠(改善) 시스템을 전격 도입하면서 더욱 효율적으로 발전했다.

카이젠은 토요타가 비용절감을 위해 추진한 생산성 혁신 운동으로, 공급부품을 단순화하고 재고를 줄이는 '적시생산시스템'(just in time)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과거처럼 많은 부품이 조립대를 흘러가며 제작하는 방식을 버리고 고객수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생산라인 프로세스로 바꿔 고객맞춤형 유연생산체계를 체질화했다. 이를 통해 원가절감과 품질경영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트럼프는 카이젠 시스템을 단순 이식한 것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자사의 혁신 매뉴얼인 ‘싱크로’(SYNCHRO)를 구축했다. 1998년 도입해 생산은 물론 경영관리 등 직원들의 일상 업무에까지 적용시켰다. 생산 부문에서는 제품 혁신 및 품질 향상, 생산 효율성 증대, 직원 동기 부여 등을 통해 공정시간 단축, 생산비용 절감 등의 효과를 거뒀다. 싱크로를 통해 제품 조립 시간은 165시간에서 105시간으로 줄었고 생산비용은 10%나 절감됐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싱크로의 핵심 가치인 효율성과 투명성, 신뢰 등이 트럼프의 전 영역에서 체질화됐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현재 20명의 컨설턴트까지 두고 싱크로를 통해 외부 컨설팅 비즈니스까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