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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5년, 마지막 성장판을 열자]산업용 인클로저 제조사 리탈①

헤르본(독일)=김하늬 | 2014.01.21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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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서부의 소도시 '헤르본'에 위치한 리탈 본사. ⓒ김하늬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의 중견기업 (미텔슈탄트, Mittelstand)들은 대부분 한 가지 제품을 수십 년 간 개발한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성공을 일구었다. 쌍둥이 칼로 유명한 '헹켈', BMW와 포르셰 등에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 산업용 청소기 제조사 '알프레드 카처' 등이 그렇다.

하지만 전 세계 산업용 인클로저 시스템 시장 점유율 60%로 독보적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독일 혁신기업 '리탈'(Rittal GmbH & Co. KG)의 성장스토리는 조금 다르다.

산업용 금속 소재 생산 공장으로 시작한 리탈은 이후 산업용 인클로저 제조업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뒤 제품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IT·솔루션 사업을 융합해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미래시장을 선제적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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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탈의 사업 확장 히스토리. 초기 산업용 인클로저 생산에서 배선(Power Distribution), 온도조절(Climate Control), IT 인프라(IT INFRASTRUCTURE)에 이어 소프트웨어 개발(Software & Service)까지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리탈은 세 가지 혁신 전략을 활용했다. 우선 연 매출 10% 규모의 연구개발(R&D)투자, 경영 혁신을 위한 과감한 인수합병(M&A), 그리고 별도의 '서비스 컴퍼니'(Service Company)를 통한 PMI(기업인수 후 조직통합) 및 공급망 관리 전략이 그것이다.

◇"모두가 필요로 하는 걸 개발한다"...변신 또 변신=리탈의 시초는1947년 설립된 산업용 금속 가공 및 제조업체 '지가스'(Siegas)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 루돌프 로(Rudolf Loh)는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난 뒤 독일 정부가 경제부흥정책을 집중하면서 공장이 우후죽순 생기자 생산설비를 컨트롤 하는 인클로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금속부품 제조업에서 인클로저 생산으로 눈을 돌렸다.

여기에서 리탈의 첫 번째 변신이 성공했다. 초기 인클로저 모델은 단순히 전원선이나 전기배선을 한 곳에 정리해줄 수 있는 간단한 캐비닛 수준이었기 때문에 기술적 진입장벽은 높지 않았고, 기존 거래처였던 공장과 회사에 손쉽게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돌프 로는 1961년 '리탈'을 설립하고 사업을 확장하는 한편 네덜란드, 스웨덴 등 인근 유럽국가에 빠르게 지사를 열어 내수시장 확대와 해외 진출을 동시에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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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탈의 대표이자 프리트헬름 그룹의 회장인 프리트헬름 로(Friedhelm Loh) 회장
1974년 루돌프 로의 차남 프리트헬름 로(Friedhelm Loh)가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리탈은 인클로저 '제조사'에서 '시스템회사'로 두 번째 혁신을 만들었다.

우선 리탈은 제조공정을 간소화하고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인근의 원자재 납품회사를 인수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내 가장 큰 철강 제련회사인 '스탈로'(Stahlo)와 플라스틱 가공 전문회사 'LKH' 등이 리탈이 속한 '프리트헬름 그룹'에 편입됐다.

이후 리탈은 설립 19년만인 1985년 자체 인클로저 모델 PS4000으로 글로벌 표준화에 성공했고 독일 내 시장점유율 80%, 세계시장점유율 60%까지 성장했다.

볼프람 에버하르트(Wolfram Eberhardt) 리탈 홍보마케팅 이사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프리트헬름 회장은 리탈이 산업용 인클로저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성하자마자 '모든 회사가 필요로 하는 걸 만들기 위해 밸류 체인(Value Chain)을 한 단계 더 높여야 한다'며 추가 투자와 M&A를 서둘렀다"고 말했다.

◇1만3000가지 제품 양산 · 축적된 엔지니어링 데이터로 수요 창출=리탈은 선점한 글로벌 표준을 바탕으로 기존 고객사의 수요를 선제적으로 창출해 제공하는 전략으로 시장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리탈은 1990년대 들어 인클로저 내 배선(Power Distribution), 온도 조절(Climate Control) 등의 기능과 공간을 추가해 고객사에 공급하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는 인클로저 기능을 제어하는 IT 기반시설(Infrastructure) 및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공급까지 확장했다. 리탈의 고객사도 생산현장과 대형 선박뿐만 아니라 금융회사, IT기업 등으로 확장했다.

리탈은 이로써 밸류스틱(Value Stick)상에서 '지불 용의 최고가격'(WTP: Willingness to pay)의 상단에 가격을 올릴 수 있도록 '수요 혁신'을 일궜다. 단순히 제품의 품질만 높이는 게 아니라 제품을 둘러싼 시스템과 예측 가능한 미래 수요까지 제시한 뒤 실현가능한 엔지니어링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리탈은 자연스럽게 고객사의 의사결정에 진입하고 독점적 시장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빠른 시장 선점을 위해 리탈은 자체 R&D뿐만 아니라 외부 M&A도 과감히 시도했다. 리탈은 2012년 엔지니어링 전문기업 이플란(Eplan)과 자동 스위치공정 전문기업 키슬링(Kiesling)을 인수했고, 지난해 9월에는 컴퓨터 이용설계관련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데스크의 독일 최대 파트너십 회사인 커티그(Kuttig)를 추가적으로 합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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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탈이 생산, 납품하는 중대형 인클로저 이미지

아울러 리탈은 선점한 시스템 표준 기술을 활용해 고객맞춤형 솔루션을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 '공정과정 모듈화'도 이뤘다. 리탈이 밸류스틱상의 '납품 용의 최저가격'(WTS: Willingness to supply)에 근접하게 비용을 낮춤으로써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던 원동력도 신속한 '모듈화'에서 기인한다.

특히 리탈은 앞서 인클로저 제조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일상적 프로세스 혁신'이 성공한 뒤 잉여금은 고스란히 R&D비용에 투입했다. 리탈은 2012년 기준 연매출 22억유로(한화 약 3조2000억원)의 8~10%를 R&D와 M&A에 투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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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탈의 대표적인 산업용 인클로저 모델 '더 시스템'(The System) 모습. 글로벌 표준이 된 인클로저 플랫폼 T8이 내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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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클로저 관리를 비롯해 전력 효율성, 온도관리 등을 한눈에 확인하고 제어할 수 있는 '오퍼레이션 하우징'(Operationg Housing) 및 기타 장치 이미지. 리탈은 인클로저생산뿐만 아니라 IT솔루션, 엔지니어링 시스템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