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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5년, 마지막 성장판을 열자]독일 EMS 기업 라콘(LACON) ①

뮌헨(독일)=정현수 | 2014.01.2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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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독일 미텔슈탄트(Mittelstand·중견기업)들은 대부분 분업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월등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해 특정분야의 절대강자로 성장하는 것, 이것이 전통적인 독일 미텔슈탄트들의 일반적인 성장스토리였다. 수요혁신과 공정혁신을 이끌기 위한 부품 생산도 오롯이 자신들만의 몫이었다. 간혹 하청업체들에게 특정부품 생산을 맡기긴 했지만 이 역시 단순 하청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분위기가 변했다. 제품들의 생산주기가 빨라지면서 독일 미텔슈탄트들도 한 가지 제품에 들어가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꺼리게 됐다. 특히 전자제품 분야의 짧아진 생산주기는 독일 미텔슈탄트들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이 때 등장한 비즈니스 모델이 전자제품위탁생산(EMS·Electronic Manufacturing Service) 방식이다.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두고 있는 라콘(LACON)은 EMS의 성장잠재력을 간파하고 이 분야의 신흥강자로 떠오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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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챔피언의 도우미"

라콘의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한 표현은 '미텔슈탄트를 위한 미텔슈탄트'다. 라콘은 독일 미텔슈탄트를 고객으로 두고 있는 부품 생산업체다. 1985년 설립 이후 전자제품 부품 생산을 주로 해오면서 노하우를 쌓았고, 2005년 랄프 하슬러(Ralf Hasler) 사장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EMS 업체로 발돋움했다. 상대적으로 역사는 짧지만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일 EMS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라콘은 현재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인 지멘스(Siemens)를 비롯해 철도 브레이크 시스템업체 크노르-브렘즈(Knorr-Bremse) 등 350여개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주로 거래하는 기업은 20~30여개 수준이다. 특히 라콘은 크노르-브렘즈 등 독일 미텔슈탄트들의 수요혁신과 공정혁신 과정에서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는 이들의 공정 시스템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라콘은 제품 설계 단계부터 고객사의 엔지니어와 함께 논의하는 단계를 거친다. 고객사의 정확한 요구를 파악해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사실상 '공동의 제품 개발'이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더욱이 라콘의 우수한 기술력은 고객사의 믿음을 두텁게 한다. 부품 생산만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관련 부품의 품질은 뛰어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탄생한 우수한 품질의 부품은 고객사 입장에서 밸류스틱 상의 '지불 용의 최고가격(WTP·Willingness to pay)'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완성제품의 가격을 더욱 높일 수도 있다. 아울러 관련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이 때문에 밸류스틱 상의 공정혁신도 한층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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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하슬러 라콘 사장
랄프 하슬러 라콘 사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반적인 EMS 기업들은 어떻게든 관련 부품을 저렴하게 생산할지 고민하지만 라콘은 고객들과 제품을 함께 개발하면서 하나의 솔루션을 찾고 있다"며 "고객사가 일방적으로 부품 생산을 주문하거나 단순 조립만 요구할 경우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는 게 라콘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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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루마니아 1대1 '공정혁신'

밸류스틱 상의 공정혁신을 위해 라콘 스스로도 내부 혁신에 나서고 있다. 루마니아 공장이 대표적이다. 독일과 인접한 루마니아는 독일에 비해 인건비가 저렴하다. 자연스레 고객사에 납품하는 부품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 독일 EMS 기업들은 이처럼 독일과 인접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 공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뮌헨 공장과 루마니아 공장의 철저한 분업·협업 시스템은 라콘만의 경쟁력이다. 라콘은 뮌헨 공장과 루마니아 공장에서 근무하는 각각의 엔니지어들에게 짝을 지어준다. 두 공장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조치다. 또 뮌헨 공장과 루마니아 공장의 전문분야를 이원화해 각자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비용이 많이 발생하고 고객과의 접점이 많은 분야는 뮌헨에서,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분야는 루마니아에서 담당한다.

공장 내부의 혁신도 이뤘다. 라콘은 독일 내 다른 EMS 업체와 달리 다품종 생산에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독일 EMS 업체들은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라콘의 다품종 생산이 가능했던 이유는 부품생산에 필요한 재료를 모듈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콘의 뮌헨 공장을 방문하면 부품 생산라인만큼 큰 규모의 창고를 볼 수 있다. 부품 생산에 필요한 재료를 보관하는 창고다. 라콘은 이 창고를 모듈화해 생산 과정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언제든지 손쉽게 재료 조달이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재료 조달이 빠르다보니 부품 생산 공정도 짧아졌다. 결과적으로 고객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가장 빠르면서 품질은 우수한'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 밖에 '라콘 제작(touched by LACON)'이라는 브랜드 전략까지 서서히 도입하면서 수요혁신까지 나서고 있다. 혁신기업의 혁신을 돕기 위해 스스로 먼저 전방위적 혁신에 나서는 라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