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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5년, 마지막 성장판을 열자] 압축공기·진공기술 세계 최고 기업

에슬링겐(독일)=임동욱 | 2014.02.0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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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의 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 남동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에슬링겐은 인구 9만여명의 전형적인 독일의 소도시로 독일의 자동화 전문기업 훼스토(FESTO)의 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1925년 설립 후 전 세계 61개 자회사와 250곳의 지사를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훼스토의 본사를 찾았다. 에슬링겐의 한적한 벌판에 자리 잡은 훼스토 본사의 넓은 잔디밭에는 매일 아침 여러 대의 납작한 은색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제초작업을 하고 있다.

훼스토 메인 빌딩의 뒷편에는 수 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홀이 있다. 이곳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고 신제품을 공개한다.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외부와 단절이 없는 공간이다. 유리온실을 연상케 하는 이곳에는 단 한 대의 에어컨도 설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여름 평균 실내온도가 25도 이상 올라간 적이 없다. 12년 전 지어진 이 건물의 천장은 공기압으로 움직인다. 실내 곳곳을 공기가 통과하면서 열기를 빼낸다. 겨울에도 온도 변화는 거의 없다. 효과적으로 열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 400개에 달하는 건물의 기둥은 지열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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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스토는 공기의 힘(공압)을 이용한 공학기술, 뉴메틱(pneumatic)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혀온 기술 기업이다. 자사의 핵심 경쟁력을 '공기와 움직임'(Motion with air)으로 제시하고 있는 훼스토는 오토메이션(자동화 기술) 분야의 핵심 기술인 압축공기와 진공기술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공동 창업자인 알베르트 훼저(Albert Fezer)와 고트리브 스톨(Gottlieb Stoll)의 이름을 합쳐 하나의 브랜드로 탄생한 훼스토는 본래 목공기계를 만들던 제조업체였다. 1955년 창업자 고트비르 스톨의 장남인 쿠르트 스톨 박사가 미국으로 건너가 기계공학 분야 자신의 연구과제를 뉴메틱으로 정하면서 훼스토는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다.

훼스토는 뉴메틱의 엄청난 잠재력을 인식하고 즉각 이를 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기회는 포착했지만 현실의 벽은 상당했다. 뉴메틱이란 새로운 분야에 대해 기존 구성원들은 거의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방법은 세심하고 상세한 교육 뿐이었다. 이에 대해 훼스토 측은 "당시 관련 지식이 없던 그들은 기초 단계부터 '고객'처럼 교육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교육 시스템은 1980년대 이후 '훼스토 디닥틱'(Didactic)이란 이름의 독립적인 교육·훈련 사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훼스토는 뉴메틱 시장 진입 1년 만인 1956년 다양한 실린더와 밸브 등을 출시했고 1960년대 초에는 특수 기계장비 제조 과정의 실장(마운팅) 관련 문제들을 해결해 내며 뉴메틱 기술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훼스토의 고객은 뉴메틱과 전기구동 기술을 원하는 전 세계 176개국, 30만개 이상의 기업들이다. 이들 고객들은 자동차, 식품 및 포장, 전자, 바이오, 제약, 수처리 등 200여개 산업군에 포진해 있다.

훼스토는 다양한 고객들을 위해 매년 1만개 이상 고객에 특화된 솔루션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고객의 기존 설비에 바로 가져다 붙일 수 있는 '레디 투 인스톨'(Ready to Install) 시스템과 고객의 상황에 완전히 맞춘 '테일러 메이드 솔루션'(Tailer-made solution)도 제공한다. 스스로 규격을 확립하고 이를 모듈화해 어떤 상황에서도 '플러그 앤 워크'(Plug & Work)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훼스토는 영업사원이 없다. 단순히 제품만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객의 생산성을 최대화시킬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문제 해결자'(Problem Solver)들이 고객들을 접촉한다. 에베하르트 바이트(Dr. Eberhard Veit) 훼스토 회장은 "우리는 전 가치창출 사슬(Value Creation Chain)에 걸쳐 고객들에게 부가가치를 제공한다"며 "우리의 혁신은 유통채널을 포함해 시장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훼스토는 전 세계 2900여개 특허를 보유한 기술 강자다. 그럼에도 단독 행동보다는 네트워킹을 중시한다. 시장 내 고객들의 문제점들에 초점을 맞추고 산업 리더들과 손잡고 미래의 혁신을 함께 이끌어내는 '협력'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바이오닉스(Bionics: 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공학) 분야 연구를 위해 훼스토는 1990년 초부터 '자연에서 배우고 영감을 끌어낸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를 위해 전 세계 유수의 대학, 연구소, 개발사들과 연계해 리서치 컨소시엄 '바이오닉 러닝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훼스토 혁신의 중추 역할을 맡게 된 '바이오닉 러닝 네트워크'는 하늘, 땅, 바다의 동물들을 연구해 이를 로봇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가오리, 해파리, 펭귄 등의 형태를 본 뜬 로봇들을 내놨고 지난 2010년 코끼리의 코를 모방해 만들어 낸 작업보조 로봇 '바이오닉 핸들링 어시스턴트'는 독일 내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게 주어지는 '독일 미래상'(German Future Prize)을 수상했다. 2011년에는 실제 새처럼 나는 조류 로봇 '스마트 버드'를, 지난해에는 초경량 로봇잠자리 '바이오닉옵터'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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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스토가 2010년 개발한 바이오닉 핸들링 어시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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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스토가 지난해 개발한 로봇잠자리 바이오닉옵터 (출처: FESTO)

훼스토의 혁신을 기업 경영전략 분석 프레임인 '밸류스틱'을 통해 들여다보면 흥미롭다. 수요부분에 있어 훼스토는 업계의 리더 기업들에 초점을 맞추고 제품 및 솔루션의 질이 높을 경우 이들의 '지불용이가격'(WTP: Willingness To Pay)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바이트 회장이 "우리 제품가격이 더욱 높아지는 수준보다 제품 품질 향상의 폭은 더욱 커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고 수준의 솔루션을 높은 가격에 업계 리더 기업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사실상 표준화할 경우 후발 기업들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고객 주문이 복잡해지고 늘어나더라도 이미 갖춰놓은 설비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훼스토의 부담은 크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필수적이다. 최근 내놓은 스마트버드나 바이오닉옵터는 팔기 위한 상품 자체라기보다는 고객사들에게 앞으로 응용이 가능한 기술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고객이 해당 기술에 관심을 보일 경우 훼스토는 단일 제품을 파는 것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기회를 잡게 된다.

공정·공급망 혁신도 이뤄졌다. 훼스토는 전 세계 27개국에 어플리케이션 센터를 만드는 등 현지 고객과의 접점 확대에 나섰고 전 세계 11개 생산 네트워크(GPC)를 통해 해당 지역에서 그 지역에서 판매될 제품을 생산토록 하는 체제를 갖췄다. 전 세계 훼스토 네트워크 내에서 동일한 품질과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물류비용 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훼스토는 2020년까지 전체 매출의 2/3 이상을 유럽 외부에서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2012년 훼스토 매출은 전년 대비 6% 증가한 22억4000만 유로(한화 약 3조2850억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