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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5년, 마지막 성장판을 열자] 드로기그룹 ①

뒤셀도르프(독일)=기획취재팀 | 2014.02.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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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가치가 뛰어난데도, 특수한 상황으로 사업이 부진한 알짜 기업을 골라 장기 투자한다."

독일 사업지주회사(industrial holdings) 드로기그룹(Droege group)의 투자 철학이다. 큰 틀에서 사업지주로 분류되지만 드로기그룹이 추구하는 사업지주 모델은 사업지주 자체가 드문 한국은 물론, 지주회사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드물다. 굳이 비교하자면 세계 최고의 가치투자자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와 비즈니스 모델이 유사하다.

외부 자금이나 은행 차입 없이 순수 자기 자본 위주로 직접 투자하는 점, 투자기업의 본질가치 회복과 성장을 목표로 장기 투자하고, 여기서 지주회사의 가치 성장을 도모하는 점 등이 판박이다.

대상 기업을 물색할 때 대주주 가문이나 경영진의 역량과 도덕성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까지 닮았다. 이 때문에 발터 드로기 드로기그룹 회장은 유럽의 워런 버핏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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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기그룹은 그러나 버크셔 해서웨이보다 더 혁신지향적이다. 자본투입만으로 투자 대상 기업의 혁신을 '촉진'하는 버크셔 해서웨이보다 투자기업의 혁신을 '직접' 일궈 내기 때문이다. 혁신 변화관리 프로그램까지 마련해 두고, 대상 기업을 완전히 탈바꿈시키고, 이 과정에서 필요 자본을 투입해 성장을 이끈다. '혁신의 실행'을 경영 철학으로 내걸고 있을 정도다. 아울러 투자기업의 성장을 위해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도 버크셔 해서웨이와 다른 점이다.

드로기그룹의 시작은 1988년부터다. 당시 독일 최고의 경영 컨설턴트로 이름 높았던 발터 드로기가 회생이 필요한 고객 기업에 컨설팅 서비스 외 자기자본까지 직접 투자하는 서비스를 유럽 최초로 제공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발터 드로기는 "혁신의 끝을 보기 위해서였다"고 회상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면서 컨설팅(Advisory)과 투자(Capital)가 융합된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이 독일에서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산업 매니지먼트 영역'과 '투자금융 영역'이 융합된 창조적 금융인 셈이다.

'창조금융'을 고민하지만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돼야 할 지 고민하는 한국 금융업계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특히 패밀리 오피스 서비스를 고민하는 증권사, 사모 구조조정 펀드, 심지어 자기자본투자 부문을 지닌 대형 통합은행 등에 좋은 아이디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드로기 그룹은 자신들의 투자 방식을 '에버그린 투자'(Evergreen Investing)로 불러 왔다. 이 모델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견기업의 장기 파트너를 자처하는 금융투자사나 성장 기업을 장기적으로 돕는 금융투자사를 일컫는 보통명사가 되어 가는 중이다.

◆사업지주회사란? 지주사가 자체 사업을 가지면서 다양한 자회사를 거느리고 시너지를 도모하는 형태의 결합기업을 말한다. 순수지주회사 비중이 높은 한국과 달리 독일, 미국 등에서는 사업지주회사가 더 보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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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드로기 드로기그룹 회장
▲다음은 발터 드로기 회장과의 일문일답

-비즈니스 모델이 굉장히 독특한데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인가.
▶고객 기업 전체를 잘 이해하고, 그 특성에 맞춰 기업을 변화시키는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장기 성장의 체력을 북돋우면서 기업 가치를 키우도록 돕는다. 우리는 구조조정의 올바른 방법론을 생각하는 동시에 지속적 성장의 올바른 방법도 함께 고민한다. 이를 위해 비전, 전략, 운영 프로세스, 조직구조뿐 아니라 기업문화까지도 통합적으로 고려해 어떻게 하면 고객 기업이 내부 역량을 유지하며 성장 엔진을 되살릴 것인지 파고든다.

-'컨설팅'과 '자기자본 투자'라는 두 사업부문을 동시에 운영하는 이유는?
▶혁신의 끝을 보기 위해서다. 통합 변화관리 프로그램 하에서 분명 문제의 이유를 찾고 해답도 찾을 뿐 아니라 실행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기존에 안고 있던 문제로 인해 적절히 투자를 못하거나, 필요 자본이 모자라기도 할 것이다. 이 갈증을 해소해 줘야 혁신과 더불어 지속 성장의 정상 궤도를 탈 수 있다.

투자 대상 기업은 어떤 기준에 따라 결정하는가.
▶당연히 회생이 필요한 기업이 대상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가이드를 따라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는, 본질 가치를 지닌 기업이어야 한다. 그 중에서 미래에 대한 전략이 없는 회사를 도와주고 키운다. 신뢰할 수 없는 기업은 인수하지 않는다. 또 의사결정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의 주식을 인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혁신의 중앙집중화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그래서 차라리 지분 100%를 인수할 수 있다면 최상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기존에 인수한 사업들의 포트폴리오와 시너지도 생각한다.

투자 대상 기업의 규모에 대한 기준은?
▶매출 규모 3000만유로(약 450억원)에서 10억유로(약 1조5000억원) 정도의 중견 기업 위주다. 이런 기업들 중 이자·법인세·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률(EBITDA margin)이 마이너스(-) 대에서 10% 이내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다.

전체적인 수익구조가 궁금하다.
▶드로기그룹의 기업가치 성장은 2가지 동인을 통해 이뤄진다. 변화관리 프로그램 제공에 따른 수수료와 여기에 자기 자본 직접 투자로 인수한 기업의 가치 성장을 통해 기업가치를 키워나간다. 2012년 기준으로 드로기 그룹의 매출은 74억 유로(약 11조원)를 넘어섰다.

인수기업을 되파는 것으로 수익을 거두지는 않는가.
▶우리의 철학은 '팔아서 자본이득을 거두는 것'(exit)에 있지 않다. 우리는 투자 기업과 관계를 아주 길게 가져가면서 함께 가치를 키워나가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투자자가 아니라 창업자 관계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를 위해 자본 투자 외에도 사업 전략 실행에 필요한 산업 전문성과 노하우도 제공하고, 경영 자원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는 변화관리 이후 지속 성장을 위한 매니지먼트 교육 시스템도 운영할 계획이다.

드로기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IT 기반 물류 솔루션, 모바일 물류 트래픽 관리, 의료 진단 및 기기, HR 등으로 다양하다. 어떤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는가.
▶가장 큰 시너지는 이 사업들을 통해 미래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제조업의 혁신은 일상 업무 프로세스에서 매일 매일 개선을 이뤄낸 기업들이 이끌 것이다.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갑자기 출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바일과 디지털 제조 프로세스로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트렌드는 IT, 특히 모바일 물류 솔루션 사업 경험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HR(인사) 서비스 사업을 통해 바뀌어 가는 기업 업무 환경에 따른 구성원들의 변화와 유연한 인사조직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의료 사업 분야를 통해서는 최종 소비자의 프로파일링을 읽을 수 있다.

글로벌 전략은?
▶우리는 국경을 넘어선 글로벌 프로젝트를 환영한다. 미래를 읽으려면 그 시야가 글로벌 수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현재도 유럽 이외에 미국, 바레인, 싱가포르, 중국, 인도에 지사를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보면 35개국에 걸쳐 135개 사업체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아시아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중요한 시장이자 잠재적 파트너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 특히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유럽 기업을 인수하고자 하는 중국, 한국 기업들에게 우리가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인수를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본을 직접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