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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5년, 마지막 성장판을 열자]180년 전통의 리크머스가 겪은 '위기'와 '혁신'

함부르크(독일)=김하늬 | 2014.03.18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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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크머스그룹(Rickmers Group)은 설립한 지 180년 된, 독일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용선회사다. 현재 베르트람 리크머스 회장까지 5대째 가업으로 선박 서비스업을 잇고 있다.

리크머스는 세계 제 1·2차 대전, 경제대공황, 오일쇼크까지 겪으면서도 '생존'해왔고 사세를 확장했다.
리크머스는 1920년대부터 독일 최대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 리크머스라인(Rickmers-Linie) 본사를 세우고 발전기, 기관차, 건설기계 등 주로 중대형 산업용 제품의 해상 물류 서비스를 선점하기 시작했다.

베르트람 리크머스(Bertram R.C. Rickmers) 회장은 리크머스의 생존력의 원천을 독일 기업들이 가진 '지속성(persistence)의 DNA'라고 설명한다. 베르트람 회장은 "독일의 제조업 기업들이 작은 볼트나 부품 제조 기술 하나로 히든챔피언이 된 것을 한 우물을 파는 '지속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마찬가지로 우리도 선박 서비스업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리크머스의 가장 혹독한 시련'이었던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와 지금까지 이어지는 조선 및 해운업의 침체 속에서도 리크머스는 지속성의 DNA로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어긋난 예측...낙관이 빚은 비극=리크머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도 해운업의 호황이 한동안 이어질 것을 확신했다. 리크머스는 2002년부터 시작한 유럽-극동-미주를 잇는 중장비화물 정기운송 서비스 '펄스트링'을 아시아까지 연결했다. 리크머스라인은 중장비 특수화물을, 리크머스마리타임은 중대형 컨테이너를 대량 발주한 뒤 동아시아 해운업체에 용선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창출했다.

아울러 리크머스는 유럽, 북미뿐만 아니라 일본과 한국에까지 리크머스라인 지사를 설립하고 동아시아 공략에 속도를 붙였다. 당시 리크머스라인 한국법인 설립식에 참석했던 게르하르드 얀센 중역은 "중국, 인도, 중동 등에 새로운 시설 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노후 시설에 대한 교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 전망이 밝다"며 "부정기선 시황도 좋은 편이라 2012년까지 장기 호황을 유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크머스는 이듬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최대 자산인 선박의 가치가 기존대비 40% 미만까지 떨어졌고, 발주한 선박의 절반 가량은 벌금을 물면서까지 발주를 취소하는 상황에 몰렸다. 당시 국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도 리크머스로부터 수주한 컨테이너선 계약 다수가 취소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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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한 BDI지수(벌크선운임지수)

리크머스는 '돌발변수'에 대한 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금융위기→교역 급감→물동량 감소→운임지수 하락→용선 감소, 선가하락에 따른 자산가치 감소→실적악화→신규발주 취소 및 금융부채 급증으로 이어진 시나리오가 리크머스의 목을 죄었다.

금융위기 직전이던 2007~2008년 리크머스의 매출액은 업계 추정 13~15억유로(한화 약 1조9200억~2조2169억원)에 달했지만 2012년 기준 6억7500만 유로(9800억원)로 줄었고 기업 순이익은 22만유로(32억원), 순부채는 17억6800만 유로(2조6128억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결국 리크머스는 용선 선박 일부를 구조조정하는 한편 계열사를 통해 선박 관련 서비스업에 집중했다.

◇위기 속 빛나는 '조연'의 힘=리크머스는 2011년 대대적인 그룹 인사교체와 함께 선박과 관련된 서비스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설립 이후 최초의 회사채 발행, 금융투자회사와의 조인트벤처(JV) 결성 등 생존을 위해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물론 리크머스는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10위 안에 꼽히는 '공룡' 용선회사다. 리크머스는 최대 1만3100개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선박과 중대형 물류운송선, 벌크선과 자동차운반선 등 총 92개(2013년 상반기 기준)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고, 이중 53대는 직접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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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크머스그룹의 세 가지 사업부. 왼쪽부터 마리타임 에셋, 마리타임 서비스, 리크머스 라인.
하지만 리크머스는 2010년 이후 중점 사업을 해상 물류 서비스뿐만 아니라 선주들을 위한 선박 관리, 운항사 인증 표준화, 선박 금융컨설팅, 선박 운행 컨설팅 등도 사업화에 성공, 후방산업까지 확장했다.

이에 따라 리크머스는 크게 3가지 사업부로 움직이고 있다. △'마리타임 애셋'을 통한 선박 금융 컨설팅 및 매니지먼트 △ '마리타임 서비스'를 통한 선박 운행관련 매니지먼트 △'리크머스 라인'을 통한 용선 등이 그것이다.

이는 리크머스가 주요 핵심사업인 용선뿐만 아니라 계열사를 통한 부가서비스업을 고르게 발전시킨 덕분에 가능했다. 위기 속에서 조연들이 빛을 발한 것이다. 특히 계열사간 유기적 업무연관성과 유연한 대화를 통해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빠른 시간에 정착시켰다.

한편 리크머스는 금융부채를 줄이기 위해 설립 이후 처음으로 회사채 발행을 시도하고, 헤지펀드나 금융투자회사와 조인트 벤처를 결성해 신규 선박을 발주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도 감행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리크머스는 독일 프랑크프루트 증시에 설립 후 최초로 회사채 1억7500만유로(한화 약2560억원, 이자율 8.875%) 규모의 회사채를 상장시켰다. 리크머스라인은 덴마크 선주사인 머스크라인의 미국 지사와 조인트벤처를 결성했으며 미국 오크트리캐피털과 공동으로 파나막스급 컨테이너선 16척 발주를 위한 의향서(LOI)를 체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