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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키플랫폼 특집]선진 금융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흐름, 소셜캐피털리즘

이경숙 | 2014.04.26 11:23

이것 참, 기묘하다.
기업이라는 생산수단과 창출하는 가치의 사회 공유를 중시한다고 하니 사회주의 같기도 하고, 사업의 효율성과 이윤의 지속 창출을 중시한다고 하니 자본주의 같기도 하다.

이것은 투자자들이 하면 책임투자(Resposible Investment)라 불린다. 기업가가 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나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이라고 불린다. 무하마드 유누스 같은 사회적기업가가 하면 사회적 사업(Social Business)이라 불린다.

앞서 가는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합쳐 '소셜 캐피털리즘(Social Capitalism)', 우리말로 굳이 바꿔 말하자면 '사회적 자본주의' 혹은 '사회 자본주의'라 부른다. 개념은 모호하다. 아직은 일종의 '현상' 차원이다. 미국 포브스(Forbes)의 칼럼니스트 헤이든 쇼네시는 소셜 캐피털리즘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이념이 아니라 협력과 공유에 의해 정의되는 것."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면서 돈을 버는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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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박 블룸버그 지속가능성 매니저, 김성우 KPMG 지속가능경영본부 전무,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사장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14 키플랫폼에서 선진금융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흐름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23일 혁신(Innovation)을 주제로 열린 머니투데이 국제회의 '2014 키플랫폼'에서 국내외 금융 전문가들은 '소셜캐피털리즘'을 화두로 던졌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소셜캐피털리즘은 우리 앞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환경 문제에 대해 선투자한다"며 "이러한 산업에 투자하고 컨설팅하는 데 있어 금융의 역할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셜캐피털리즘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건 지금의 자본주의가 '지속불가능성'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의 앤드류 박 지속가능성 매니저는 "지속가능성은 자연환경 이슈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의 불안정성을 포함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사회는 자연과 함께 우리 인류가 사는 환경을 구성한다. 올해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선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가장 높은 우려를 일으키는 리스크의 첫 번째로 주요 경제권의 국가 재정 위기가 꼽혔다. 수자원이나 기후 변화 같은 자연환경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 불안정성 같은 사회환경 문제도 기업이 사업을 지속하려면 대응해야 할 리스크라는 뜻이다.

소셜캐피털리즘은 이러한 리스크에 선제 대응하면서 이윤을 낸다. 회계법인 KPMG의 김성우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 아태지역 대표는 "과거와 달리 기업이 사회와 더 깊이 연결되고 있다"며 "예전엔 기업에 사회에 혜택을 주려면 이윤을 떼어서 기부했지만 이제는 사회에 혜택을 주는 일로 이윤을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소셜캐피털리즘은 그래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 돈 버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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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KPMG 지속가능성 아태지역 대표./사진=홍봉진 기자


김 대표는 세 가지 사업을 사례로 소개했다. 첫 번째는 방글라데시의 사회적기업 그라민과 다국적 식품업체 다농이 설립한 조인트벤처 그라민다농이다. 이 회사는 방글라데시에 요구르트 제조공장을 설립해 하루에 8만 개를 생산하는데, 이것이 많이 팔릴수록 지역사회에 이롭다. 요구르트 원재료는 지역 소농장에서 구입하고 영업은 동네 여성을 고용해 맡기기 때문이다.

태양광 패널회사로 유명한 솔라시티는 임대모델을 개발해 사회와 공유할 만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은 친환경적이지만 비싸기에 보급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솔라시티는 소비자가 돈이 많든 적든 자기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지불 옵션을 만들었다. 선택지는 세 가지다. 사용량만큼 돈을 내거나 자기만의 맞춤형 지불수단을 택하거나 선불로 다 내거나.

심파네트웍스라는 인도회사는 가격 정책의 혁신으로 소외층 100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했다. 전기를 쓰지 못했던 농촌 사람들에게 태양광을 공급하면서 각각 상황에 맞도록 지불하게 만든 것이다. 이 회사를 설립한 폴 니덤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기술 전문가 출신이다. 소프트웨어를 사용량만큼 과금하는 기술을 태양광 보급에 사용했다.

◇'사회와 환경 고려하겠다' 선언한 1188곳의 투자자들

투자자들 중에서도 자연환경과 사회, 지배구조(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이슈를 고려해 투자하겠다는 곳이 늘고 있다. 유엔 책임투자원칙(PRI)에 가입한 투자자와 전문기관은 2006년에 100곳이던 것이 2013년 1188곳으로 늘었다. 가입기관의 운용자산을 합하면 34조 달러, 우리 돈으로 3529조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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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박 블룸버그 지속가능성 매니저./사진=홍봉진 기자


물론, 이 자산이 모두 책임투자 원칙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PRI 가입기관인 국민연금의 경우, 지난해 전체 운용자산 425조 원 중 6조4000억 원을 PRI 기준에 맞게 투자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PRI가 제안하는 ESG 이슈를 고려하는 투자자는 늘고 있다. 미국만 봐도 120억 달러에 불과하던 ESG 펀드가 2012년 1조130억 달러로 증가했다. 우리 돈으로 1050조원에 이르는 규모다.

블룸버그의 앤드류 박 지속가능성 매니저는 ESG로 대표되는 무형자산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무형자산의 가치는 1975년엔 17%였지만 2010년 81%로 높아졌다.

박 매니저는 "ESG는 종전 재무상태표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재무외적 데이터로 장기 미래 전략을 볼 수 있게 해 기업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장기적 시각을 얻게 한다"고 설명했다. 단기적 재무상태에만 초점 맞추면 지속가능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엔 임원보수 데이터를 사용하려는 수요가 미국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 지속가능성에 임원 보수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인식이 투자자 사이에 확산된 탓이다.

과연 소셜캐피털리즘이 인류 앞에 놓인 '지속가능성'이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박 매니저는 시장만의 힘으로는 그걸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선 투입에 비해 산출이 좋은 투자여야 확산되기 때문이다.

소셜캐피털리즘이 기존 자본주의의 대안이 되려면, 환경지킴이가 환경파괴자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즉, 환경파괴자는 높은 비용을 치르도록 사회가 압박해야 한다. 정부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비영리단체, 비정부기구 등 시장 바깥의 주체들이 함께 움직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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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유엔 책임투자원칙 서명기관 및 운영자산 규모 (자료 : 유엔책임투자원칙 UNPRI, 단위 : 조 달러)

[용어설명] 유엔 책임투자원칙(PRI,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 전문

우리는 기관투자자로서 투자자들의 자산에 대하여 장기적 관점에서 최상의 수익을 이끌어낼 책임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이슈들이 투자수익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원칙의 적용을 통해 투자자들이 바람직한 사회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리는 수탁자 책무(Fiduciary Responsibilities)를 다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사항을 준수하고자 한다.

1. 우리는 ESG 이슈들을 투자 분석 및 의사결정시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2. 우리는 투자철학 및 운용원칙에 ESG 이슈를 통합하는 적극적인 투자가가 된다.
3. 우리는 우리의 투자대상에게 ESG 이슈들의 정보공개를 요구한다.
4. 우리는 금융산업의 PRI 준수와 이행을 위해 노력한다.
5. 우리는 PRI의 이행에 있어서 그 효과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한다.
6. 우리는 PRI의 이행에 대한 세부활동과 진행사항을 보고한다.

PRI는 점점 부각되고 있는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 이슈를 투자의사결정시 반영하도록 전 세계 기관투자가들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UN 사무총장에 의해 총괄 진행되었다 .

이 원칙에 서명함으로써, 우리는 기관투자자로서의 수탁자 책무(Fiduciary Responsibility)에 부합하는 원칙의 적용과 이행을 다짐하고자 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이 원칙의 내용을 더욱 발전시키고 그 효율성을 평가하고자 한다. 이것이 수탁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길임과 동시에 이러한 원칙 하의 투자활동이 더 나은 사회로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와 함께 우리는 다른 투자자들이 이 원칙을 적용하도록 장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