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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키플랫폼] 알렉산더 켈러 롤랜드버거 글로벌 화학산업부문 대표 인터뷰

하세린 | 2014.05.09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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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키플랫폼 알렉산더 켈러 인터뷰
"너무 많은 질문을 던져놓고 머뭇거리면 행동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혁신, 변화는 속도와도 관계가 있다.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선 두번, 세번 확인하게 되고,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유럽 최대 컨설팅업체인 롤랜드버거(Roland Berger Strategy Consultants)의 글로벌 화학산업부문 대표인 알렉산더 켈러는 한국 기업들에게 받은 느낌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행동보다는 질문이 많고, 생각만큼 글로벌 시장에 대한 열망도 크지 않다는 것.

켈러는 지난달 23~2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머니투데이 미디어의 글로벌 콘퍼런스 '2014 키플랫폼' 연사로 나서 혁신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한국 화학기업들에게 솔직한 조언을 했다. 다음은 켈러와의 일문일답.

◇애플·구글만 혁신하나? '구식산업'에서도 혁신은 매일 일어난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신엔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혁신(breakthrough)과 성장(development). 이전에 살충제를 10L 통에 파는 회사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살충제를 막상 써야 하는 농부는 1.7L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15년간 용량을 재어가며 1.7L를 맞춰 사용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왜 1.7L짜리 통을 팔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10L 통을 1.7L 통으로 만드는 것, 이 역시 혁신이다. 너무나 간단한 거다. 혁신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이건 회사가 고객과 소통할 때, 회사 내에서 의견 교환이 일어날 때 생긴다.

중요한 건 혁신을 포괄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문자 대신 '카카오톡'을 사용하게 된 것도 혁신이다. 그러나 이런 예시는 너무 제한적이다. 내가 제조업계에서 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끔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별을 잡으려면서 막상 땅에 있는 금은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느낌이 든다. 금을 밟고 있으면서도 눈은 하늘에 향해 있는 것이다. 혁신은 삼성·구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구식'인 업계에서도 혁신은 매일 매일 일어날 수 있다.

◇유럽계 컨설턴트가 본 한국기업의 특징 "너무 신중하다"
-한국 기업의 특징은.
▶우선 한국 기업들은 완벽을 추구한다. 물론 경험상 한국 화학기업들에 관한 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무엇을 하든 세계 초일류가 되고 싶어한다. 단지 '좋은 것'만으로는 안된다. 매사에 최고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또 일을 실행하기까지 많은 검토와 평가과정이 있다. 때로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검토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시행까지 너무 오래 끈다는 말인가.
▶시행하기까지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고 머뭇거리면 때로는 행동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실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실패를 용인해줄 수 있는 사회인가'라는 물음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혁신, 변화는 속도와도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같이 한국사회에서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가 있다.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선 두번 세번 확인하게 되고,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에선 사람들이 무조건 저지르고 보는 측면이 있다. '잘되면 좋은데 안되면 다른 걸 해보지 뭐'라는 문화가 있다. 혁신과 변화를 위해선 이런 문화도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 글로벌 시장공략 의지 있는지 의문"
-유럽에선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하고 있나.
▶유럽과 한국 화학업체들은 비슷한 환경에 있다. 우선 두 국가 모두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다. 값싼 연료와 원자재란 없다. 또 고급 소비자층이 있는 것도 비슷한 점이다. 그러나 유럽 업체들은 지난 10년간 성장 없는 경기침체 속에서 영업해왔다. 한국은 그래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런 면 때문인지 글로벌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의지는 유럽 기업들이 한국 기업보다 훨씬 더 세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화학기업들이 독일 화학기업보다 못나갈 이유가 없는데, 한국 기업들은 국내 영업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 중국시장을 공략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중국도 '글로벌 시장'은 아니다.

독일계 글로벌 화학회사 바스프(BASF)가 중국시장에 진출한 게 1868년이다. 이때도 바스프는 전세계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기업들이 글로벌 전략을 더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상하다. 한국 업체들은 날마다 글로벌을 외치는데.
▶'원한다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한국 기업들과 자주 만나지만 여태껏 글로벌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한 기업은 본 적이 없다. 글로벌화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30년 후 이 분야에서만큼은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분명하게 말한 기업은 없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