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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근무할 땐 리더의 비전 제시·공유 더 중요"

2021 키플랫폼: 키맨 인터뷰 - 이선영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

김상희 조철희 | 2021.04.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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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사진제공=이선영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 등 원격근무가 확산되면서 효율성과 생산성이 향상됐다는 기업들의 반응을 적잖게 찾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도 비대면 업무 방식은 과거로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원격근무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 떨어져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원격근무가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인식과 시스템의 변화가 필수다.

'일의 미래'를 주제로 오는 28~3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리는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21 키플랫폼'(K.E.Y. PLATFORM 2021)은 조직 행동 전문가인 이선영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원격근무의 생산성 향상 방안 등을 들어봤다.

-원격근무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가?
▶원격근무가 직원들의 몰입을 높여주고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는데는 2가지 메커니즘이 있다. 첫째, 원격근무로 '페이스타임'(facetime·마주하는 시간)을 미세 모니터링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관리자는 결과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더 큰 자율성을 갖게 됐다. 자율성은 성과를 끌어내는 큰 원동력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회사와 조직은 직원과 공유할 수 있는 보다 명확한 업무 프로토콜을 설정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행정적인 회의, 예를 들어 해당 회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한 회의 등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실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다수의 응답자들이 원격근무 시간이 증가하면서 주변 업무보다 핵심 업무에 집중하게 돼 업무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답했다. 또 업무 스케줄을 직접 구성할 여지가 커지면서 더 많은 권한을 가진 것으로 느끼는 응답자도 많았다. 원격근무를 채택한 기업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50% 이상의 고용주가 원격근무가 손해보다는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들은 대부분 원격근무가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격근무의 단점은 무엇이며 이를 보완하는 방법은?
▶원격근무가 일반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지만 단점도 있다. 사회적 교류 부재로 인해 직원들이 외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서로에 대한 접근이 줄어 고립감이 생길 수도 있다. 또 재택근무의 경우 육아, 가사 등으로 여성에게 더 많은 부담이 주어지는 불평등도 문제다.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직원들에게 전문가 상담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고립감은 명확하고 접근 가능한 업무·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으로 줄일 수 있다. 또 조직의 리더는 분기별로 전 직원 회의를 통해 고차원의 비전과 전략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여성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부분은 무료 보육 서비스 등 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수이지만 이와 별개로 기업이 더 많은 직원에게 적극적으로 자녀와 가족을 위한 지원을 고민하고 제공해야 한다.

-원격근무를 쉽게 도입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는 직원에게 재량권을 준다는 개념 자체가 서구에서도 친숙하지 않다. 결과와 성과가 분명한 영업 직군이나 스포츠 선수 같은 경우에는 실적과 성적을 바탕으로 연봉을 주고 성과를 관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무직은 성과라는 게 분명하지 않다.

아웃풋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직원을 관리할 때 근무 시간을 기준으로 해왔다. 그래서 일주일에 몇 시간 근무했는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시간에 출근해서 퇴근하는지 등 페이스타임으로 관리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원격근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과 기반 모니터링 및 보상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전통적인 근무 환경에서처럼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기준으로 직원을 평가하고 보상하면, 직원들의 능력과 업무 스타일의 차이를 고려할 때 일부 직원들이 가짜일을 하도록 부추기게 된다. 사무실에서 다른 직원과의 교제나 웹서핑 등으로 시간을 보내게 할 위험이 크다.

명확한 업무 및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이 공유돼야 한다. 사무실 근무와는 달리 재택근무 상황에서는 업무상 문제나 제안을 쉽게 관리자에게 이야기할 수 없다. 따라서 조직은 원격근무 때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명확하면서 관리자에게 접근 가능한 업무 프로토콜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더 많은 직원이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더라도 명확하고 널리 공유되는 업무·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회의를 위한 회의 같은 불필요한 업무를 줄일 수 있다. 이는 사내정치의 여지도 없애 투명하고 공정한 조직문화를 확립하는데 도움이 된다.

-조직문화 등을 고려할 때 한국 기업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원격근무를 제대로 시행할 것으로 보는가?
▶한국은 미국, 영국과 같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코로나에 대응을 잘했다. 락다운(봉쇄조치)이 없었다.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하긴 했지만 계속 사무실로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로 인해 원격근무를 하면서 직원들에게 재량권을 준다는 개념 자체를 제대로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은 팬데믹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전국적으로 락다운이 되면서 변화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대한 위기가 닥치니까 살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대안들을 발견했다. 한국 기업들은 기존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방식을 생각하게 할 큰 계기가 없었기 때문에 향후 원격근무 시행에 저항이 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