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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케이팝 콘서트 ‘헬로우 미스터 케이’에서 외국인 유학생 커버댄스팀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뉴스1 |
케이팝 댄스가 세계적인 문화가 되고 있다. 음악 장르이자 춤 장르인 왈츠, 탱고, 살사처럼 하나의 엄연한 세계적 문화 장르가 되고 있다. 팝 문화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그 현상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오주연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교수는 최근 5년 간 이 현상을 연구했다. 오 교수는 북미 최초의 한국인 무용이론 종신교수. 그는 해당 연구를 집대성한 책 'K-pop Dance: Fandoming Yourself on Social Media'(루트리지, 2022)를 이달 초 출간했다. 학술서임에도 출간하자마자 아마존 대중무용 분야 신간 베스트셀러에 올라 현재까지 기록을 지속 중이다.
전세계 팬들이 케이팝 댄스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공부까지 하고 싶은 바람이 이렇게 나타났다. 뜨거운 반향에 힘입어 저자와 출판사는 일본어, 중국어 번역판 추가 출시도 계획 중이다. 이쯤되면 케이팝 댄스에 대한 '추앙'이다.
오 교수는 케이팝 댄스를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특히 소셜미디어에 나타난 케이팝 댄스 팬덤의 진화 과정을 추적해 밝혔다. 현재 케이팝 댄스가 어떤 문화이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때마침 한국을 찾은 오 교수에게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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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의 팬이 되는 '케이팝 댄스' · 한국에서도 최근 해외 10~20대들의 케이팝 댄스 커버 열풍 외신을 자주 접합니다. 실제로 정말 그런가요?
▶ 미국 대학가엔 댄스팀이 많습니다. 문화가 오래됐죠. 그런데 이전까진 치어리더 댄스팀이나 힙합 댄스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케이팝 댄스팀도 많습니다. 큰 대학들에는 케이팝 댄스팀이 없는 경우가 드물 정도죠.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케이팝 댄스는 미국에서 보편화 돼 있어요. 명문대들도 케이팝 댄스를 정식 교양강좌로 개설할 정도죠. 한번은 캘리포니아 남부의 한 대학생 댄스 경연대회를 가본 적이 있는데 10팀 중 6팀은 케이팝 댄스를 했어요.
이런 변화를 직접 가까이 목격하면서 무용이론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케이팝 댄스를 이론적으로 분석해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문적 연구가 아주 없진 않았지만 이렇게 한권의 책으로까지 나오게 된 것은 제가 알기로는 처음입니다.
· 어떤 내용의 책인가요?
▶ 케이팝 댄스와 댄스 팬덤에 대한 첫 이론서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틱톡 댄스 챌린지, 방송댄스 학과 확장 등 케이팝 댄스의 진화를 살펴봤습니다. 시기적으로는 1980년대부터 진화 과정을 추적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분석 관점은 소셜미디어와 팬덤입니다.
약 5년 동안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뉴욕, 대한민국 서울에서 현장을 연구하고 케이팝 댄서와 그 팬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제가 직접 참여한 안무·공연 경험도 책의 바탕이 됐습니다. 한류, 대중문화, 미디어, 공연, 한국학 관련 학자와 학생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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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명문대학들이 정식 교양강좌로 개설할 만큼 케이팝 댄스의 인기가 높다. 사진은 미국 명문대 UC버클리의 케이팝 댄스 강좌 소개 화면. |
· 소셜미디어를 케이팝 댄스의 키워드로 꼽으신 이유는 뭔가요?
▶ 2020년대의 케이팝 댄스는 '제스처형 포인트 안무'(gestural point choreography)가 특징입니다. 상체 동작이 입체적·장식적이고, 얼굴 표정도 변화가 많고 다채롭습니다. 이런 안무가 가장 강조되는 곳이 바로 소셜미디어입니다. 케이팝 댄스는 '소셜 미디어 댄스'(social media dance)의 특징을 대변합니다. 실제로 틱톡에 댄스 콘텐츠가 참 많은데 케이팝 댄스이거나 케이팝 댄스와 유사한 스타일이 특히 많습니다.
최근엔 춤을 관람하는 것이 모바일 기기를 통해 자주 이뤄집니다. 그래서 춤의 안무도 크게 변화했습니다. 15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눈길을 끄는 춤, 작은 화면에서도 눈길을 끌 수 있는 춤이 각광을 받고 있죠. 표정이나 상체 동작을 주로 강조하는 포인트 안무가 많은데 공연장 무대라면 너무 멀어 잘 보이지 않을 춤이지만 모바일 기기의 작은 화면에서는 잘 볼 수 있습니다. 케이팝 엔터테인먼트사들이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가 유튜브나 틱톡으로 유통되는 것을 미리부터 계산해 안무를 만드는 것처럼 케이팝 댄스는 소셜미디어에 적합합니다.
· 팝뮤직 장르에서 댄스도 별도로 강력한 팬덤이 생긴 것 역시 케이팝 댄스만의 특징 같습니다. 어떻게 케이팝 댄스 팬덤 문화를 분석하셨나요?
▶ 춤은 보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 추는 사람이 있어야 문화로서의 춤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춤은 사람이 몸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몸을 가진 누구나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춤에 또다른 사람들이 새로이 관심을 갖습니다. 이 시대엔 케이팝 댄스입니다. 요즘엔 무용학원에서 재즈댄스나 힙합보다 케이팝 댄스를 더 많이 배웁니다. 발레 레슨을 받듯 케이팝 댄스를 배우고 있습니다.
케이팝 커버댄스는 전세계 팬들이 원곡의 안무, 춤, 표정, 의상을 똑같이 모방한 것입니다. 팬들이 케이팝 아이돌의 춤을 따라할 때 이들은 아이돌의 몸을 모방하고 나아가 우상화함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몸을 '팬더밍'(fandoming)하는 것입니다.
· 아 그래서 이번 책의 부제가 'Fandoming Yourself on Social Media'인 것이군요. 케이팝 댄스를 따라하면서 자신이 자신의 팬이 되는...
▶ 케이팝 댄스를 따라하는 이들은 마치 자신이 아이돌이 된 양합니다. 한국어는 거의 모르지만 노래하는 입모양을 최대한 똑같이 따라하려 애씁니다. 춤만 추면 되지 노래는 부를 필요가 없지만 아이돌과 최대한 비슷하게 보이고 싶어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한테 케이팝 댄스를 따라할 때 가장 어려운 게 뭐냐고 물으면 가사를 외우는 거라고도 해요. 립싱크는 물론 얼굴 표정, 댄스 중 이동 동선 등 모든 것을 똑같이 따라하려 합니다. 옷도 똑같이 입고 화장도 따라합니다.
이들은 사실 자신이 케이팝 아이돌처럼 멋진 모습이 되고 싶은 것이고, 그런 멋진 자신을 더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팬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케이팝 댄스에 가장 열광하는 층은 10~20대 유색인종(아시아계, 남미계, 흑인계 등) 미국인이 많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아시아계 차별이 심했는데 케이팝 댄스가 이들에게 긍지를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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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BTS)이 10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서울'에서 멋진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빅히트 뮤직 2022.03.10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
편견을 벗고 진화한 한국의 춤 · 사실 춤은 한국에선 과거 퇴폐적이라는 강한 편견이 있기도 했습니다.
▶ 맞아요. 그랬었죠. 춤은 예술이 아니라고 했고, 심지어 영화 '자유부인'(1956) 등에 나타난 것처럼 윤리적인 문제로 낙인찍힌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달라졌잖아요. 예전에는 춤이 몸을 사용하는 것이라 평가절하됐다면 요즘엔 오히려 그래서 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몸에 돈을 쓰는 시대이기 때문이죠. 성형, 다이어트, 화장품 등 뷰티 산업을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몸을 자본으로 가치 있게 만드는 시대고, 몸이 최고의 상품인 시대입니다.
스트릿우먼파이터 같은 새로운 현상도 이를 방증합니다. 댄서들은 지금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지만 과거엔 '백댄서'로 늘 뒷편에 서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분들의 스타일과 개성, 매력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 춤은 또 무용이라는 단어를 쓰면 많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무용이라고 하면 순수예술 같고 고급문화 같긴 합니다. 그런데 사실 춤은 가장 원시적인 예술로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었죠. 역사적으로도 춤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발레도 왕실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처럼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들이 발레리나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팝댄스는 전통적으로는 사교댄스입니다. 예전 할리우드 흑백영화에 나오는 왈츠 같은 춤이 대표적인 사교댄스죠. 춤은 원래 사교적인 것이 중요한데, 요즘 10~20대들은 사교를 소셜미디어에서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사교댄스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케이팝 댄스가 새로운 대표적 사교댄스가 되는 것이죠.
· 1980~1990년대의 인기 사교댄스는 마이클 잭슨이 대표적인 미국 팝 댄스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를 케이팝 댄스가 차지한 것 같네요.
▶ 마이클 잭슨부터 비욘세까지 이어졌죠. 그런데 비욘세 이후론 미국 팝 댄스가 전세계를 뒤흔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자리를 왜 케이팝 댄스가 차지했을까요. 저는 케이팝 댄스가 영재교육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시스템 속에서 실력을 키우는 케이팝 아이돌은 일종의 영재교육을 받는 셈입니다. 케이팝과 케이팝 댄스는 그 교육의 성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춤은 제대로 훈련받지 않으면 운동선수들이 그러하듯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한국을 방문할 때면 댄스학원인 YGX(와이지엑스)를 꼭 찾아가 봅니다. 가서 보면 수강생들의 열정적인 눈빛과 늘 마주칩니다. 한국 같은 문화가 아니고서 과연 어떤 나라에서 이런 게 가능할까요?
· 케이팝의 세계적 인기가 시들면 케이팝 댄스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케이팝 댄스가 자생할 수 있을까요?
▶ 2020년대 들어선 케이팝 댄스가 댄스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 대학들에서 강좌까지 된 정도인데요. 힙합, 탱고, 살사 모두 음악 장르이지만 각각의 춤도 독립적인 춤 장르가 됐습니다. 지금은 케이팝 댄스처럼 보다 더 대중적인 춤이 세계적인 장르의 춤이 될 수 있습니다.
· 케이팝 댄스가 산업적·비즈니스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결국 중요한 것은 신뢰입니다. 문화를 소비하는 것은 단순히 멋진 물건을 구매하는 것 이상입니다. 지속적인 구매는 신뢰의 문제입니다. 케이팝 댄서들의 기량은 이미 최고입니다. 이젠 케이팝 댄스가 어떻게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더 좋은 세계를 만들 수 있을지, 그 방향을 제시한다면 더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와 같은 인종차별 문제에 관심을 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팬들은 이들의 노래와 춤을 문화 콘텐츠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아마 인간으로서 더 존중하고 신뢰할 것 같습니다. 인류 보편적 가치와 고민을 케이팝 댄스의 안무로도 반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케이팝 댄스 역시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한계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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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 교수 |
북미 지역 한국인 최초 무용이론 종신교수 · 미국에서 권위 있는 무용이론 학자가 되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가기 전부터 순수무용을 배웠습니다.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엘리트교육을 받은 것이죠. 2002년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대형서점에 갔는데 무용이론 서적을 찾기가 힘든 거에요. 가장 사랑하는 분야인데 책이 이렇게 없나 했죠. 그래서 제가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책은 글로 써야 하니 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철학을 부전공했습니다. 이대에서 석사과정으로 미학을 공부했습니다. 안무가, 무용수로도 활동했습니다. 미국 텍사스오스틴주립대학교에서 퍼포먼스 스터디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 미국에서 연구하시면서 힘든 점도 많았고, 보람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또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 백인 위주의 무용계에서 한국의 대중무용을 연구하는 아시아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오는 소외감이 가장 힘들었죠. 하지만 미국·유럽·백인 중심의 공연 양식이 우월하다는 서구 학계의 식민지적 관점에 도전하는 것에 학자로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이번 책이 출간되자마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케이팝 댄스를 사랑하는 많은 팬, 학자, 학생들의 관심이 느껴져 좋습니다. 책의 다양한 사례 연구에서 보여지듯 케이팝 댄스가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수용되는 방식은 국내에서 논의되는 관점과 상이한 지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연구들이 많이 나와 한국학과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무용예술학 연구가 보다 활발히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미국에는 한국의 현대무용, 전통무용, 발레 이론서가 별로 없습니다. 한국 연구자로서 한국 안무가들의 작업을 이론화해 선보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