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25억명 건강개선 목표"…의료기업 변신한 필립스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브랜드 혁신 스캐너 #4 - "필립스"

김상희 | 2022.10.23 06:00

편집자주 |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이 새로운 한주를 준비하며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찾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일요일 아침의 지식충전소 <선데이 모닝 키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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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스 의료 기기/사진=필립스 홈페이지
1982년 10월 1일 세계 최초로 CD에 담긴 음반인 빌리 조엘의 '52번가'가 일본에서 발매됐다. 이후 CD는 세계적으로 수천억장이 팔리며 음악과 영상을 담는 가장 유용한 매체로 자리 잡았고,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로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를 열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CD의 활용성이 예전 같지는 않다. MP3 등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콘텐츠를 즐기던 시대와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를 거치며 CD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경우는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CD는 여전히 상징적인 디지털 콘텐츠 저장 수단이다. 가수들은 새로운 음반을 CD로 발매하고 팬들은 그 음악을 소장하기 위해 이를 구매한다.

이같은 CD는 1970년대 후반 필립스와 소니가 공동 개발했다. 네덜란드 기업인 필립스는 당시 유럽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자 기업이었다.

1891년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서 프레데릭 필립스와 그의 아들 제라드가 설립한 필립스는 백열전구를 시작으로 TV, 밥솥 등의 가전, 반도 체, 디스플레이와 같은 다양하면서도 폭넓은 전자 제품, 장비들을 취급했다.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노광장비 기업 ASML도 필립스가 ASMI와 합자로 만든 회사다.

하지만 세계 최초 CD 개발, ASML 설립 등 기술력과 혁신을 자랑하던 필립스도 2010년을 전후해 삼성, LG 등 새롭게 부상한 경쟁자들로 인해 그 위상이 크게 위축됐다.

반도체 사업 부문은 2006년 떨어져 나와 NXP 반도체가 됐고, 2011년에는 TV 부문을 홍콩 TPV에 매각했다. 비록 계약 문제로 실행이 안 됐지만 2013년에는 오디오·비디오 사업을 일본 후나이 전자로 매각을 추진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조명 부문을 떼어냈다.

핵심 사업인 전자, 조명 사업이 떨어져 나간 필립스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필립스는 자신만의 위치를 확실히 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발빠르게 의료 기기 기업으로 변신한 덕분이다.



기업 인수·슬로건 변경·가전 사업 매각…의료 비즈니스 강화 지속



필립스는 스스로도 더 이상 전자 회사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현재 필립스는 2030년까지 매년 25억 명, 소외 지역 사회의 4억 명의 건강을 개선하는 것을 공식적인 비즈니스 목표로 내세우며 헬스케어 기업임을 공고히 한다.

2015년 미국 의료기기 제조업체 볼케이노를 12억 달러에 인수하는 등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의료 기기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있다.

1995년 발표한 'Let's make things better(한국에서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로 사용)' 슬로건이 필립스를 가전 업체로 인식되게 한다는 점 때문에 2004년 헬스케어, 조명 및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3개 부문으로 비즈니스를 단순화하며 'sense and simplicity'로 슬로건을 바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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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도 의료 부문 강화 움직임은 계속된다. 지난해 가전 부문을 30억 유로에 중국 투자사 힐하우스캐피탈에 매각한 것도 의료 분야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다. 커피머신, 진공청소기, 에어프라이어 등을 생산·판매하는 가전 부문은 2019년까지도 23억 유로의 매출을 올리던 분야였다.

지난 8월까지 필립스를 이끌었던 프란스 반 허튼 CEO는 "가전 사업은 헬스케어 기술 리더로서의 필립스의 미래에 전략적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신의 결과 현재 필립스는 GE, 지맨스와 함께 세게 3대 의료 기기 기업으로 꼽힌다.



핵심 비즈니스 고집보다 피봇으로 지속 가능성 확보


2017년 포춘에 '필립스가 급격한 전환(피봇)을 통해 혁신 리더가 된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기고는 '126년 된 네덜란드 기업 필립스는 전기 면도기와 전구부터 반도체, TV까지 모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프란스 반 허튼이 CEO에 취임한 이후 이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필립스는 현재 의료 기술 회사다'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기업이 사업을 전환하는 것을 피봇이라고 한다. 기업이 현재 제품 또는 서비스가 시장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근본적으로 비즈니스 방향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피봇의 목표는 기업의 수익 향상과 시장에서의 생존이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 피봇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시장 리더로 성장한 경우와 반대로 적절한 시기에 피봇을 하지 못해 도태되는 경우는 흔하다. 삼성의 경우 식품, 섬유 등으로 시작했지만 발빠르게 시장 변화에 대응해 세계 최고 전자 기업이 됐다. 필름 제조 업체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 맞춰 피봇하지 못해 도태됐고, 디지털 콘텐츠 유통 방식에 대응하지 못한 비디오 대여 기업 블록버스터도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의 등장으로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피봇이 모든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실패하는 비즈니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투자해 왔던 모두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피봇을 고려해야 하고 다른 모든 옵션이 소진되었을 때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그룹인 인포브란츠의 공동 설립자 비카스 아그라왈은 △막대한 자금과 자원을 투입해도 큰 진전을 볼 수 없을 때 △경쟁이 매우 심할 때 △고객이 제품에 대해 생각만큼 반응하지 않을 때 △업계에 대한 회사의 관점이 바뀌었을 때 등에 피봇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피봇을 실행하기 전에 기존 비즈니스와 제품의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경쟁사의 활동을 분석하며, 고객의 소리를 충분히 청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실행 전에는 철저한 전략 마련이 필수라고 말한다.

프란스 반 허튼 전 CEO는 취임 후 필립스의 비즈니스 방향에 대해 "회사의 핵심 DNA를 살펴보았고 이는 매우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며 "이는 필립스가 건강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TV와 같이 경쟁이 심한 시장과 비교할 때 (건강은) 여전히 많은 것을 혁신해야 하는 엄청난 기회이기 때문에 (TV와 같은) 제품 사업에서 벗어나자고 했다"고 덧붙였다.